▶ 넷플릭스‘흑백요리사’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
선거 열기로 가득했던 워싱턴 DC,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새롭게 변모한 유니언 마켓 디스트릭에 새로운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유명 정치인들이 오가는 연방의회가 인근에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넷플릭스를 통해 유명해진 한인 셰프에게 집중됐다.
지난 1일 문을 연 ‘시아’(SHIA)는 에드워드 리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이어 다시금 한국 프로그램의 인기를 확인시켜준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 배출한 스타 셰프가 바로 앞에서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관심, 방송을 통해 소개된 그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하는 한인들을 대신해 지난달 31일 오픈 준비로 분주한 ‘시아’에서 에드워드 리를 만났다.
▲ 넷플릭스‘흑백요리사’가 배출한 스타
‘흑백요리사’는 100명의 셰프가 출연해 ‘오직 맛 하나로 승부’하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유명 셰프(백수저)와 무명의 셰프(흑수저)가 매회 새로운 주제로 경연을 펼친다. 한국 요식업계를 대표하는 백종원 대표와 미슐랭 3스타 안성재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이들의 요리를 평가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자와 탈락자를 결정한다.
이미 미국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진 에드워드 리 셰프도 이들 10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참가해 첫 등장부터 주목을 받았다.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리대결을 펼치며 감동과 재미를 전해 주었고 특히 미주 한인들은 ‘미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그의 정체성에 공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으나 오히려 우승자보다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인기 연예인이 부럽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도 음식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한다.
▲에드워드 리는 누구?
1972년 뉴욕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알려졌지만 그를 임신한 모친이 출산과 산후조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바람에 사실 그가 태어난 곳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라고 출생의 비밀(?)을 밝혔다.
넷플릭스 방송 전에도 미국 예능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마인드 어브 셰프’, ‘탑 셰프’ 등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던 그는 지난해 백악관의 초청으로 한미정상회담 만찬을 준비하게 되면서 성공한 한인 2세로 한국에도 알려지게 됐다.
▲요리사의 꿈…“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던 그에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리 일찍부터 주방에서 일도 하고 다양한 레시피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리사가 되기보다는 대학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뜻에 따라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맨해튼 남부에 작은 한식당을 열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변화가 필요했던 그는 뉴욕을 떠나 켄터키 루이빌에 살면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DC 다운타운과 메릴랜드 내셔널 하버에도 새로운 식당(Succotash)을 오픈하게 되면서 최근 가족과 함께 DC 조지타운 인근으로 이사 왔다. 그는 “요리가 좋았고 음악이나 미술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며 “여전히 즐겁게 셰프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 “저는 비빔인간입니다”
많은 한인들에게 각인된 ‘흑백요리사’의 장면들이 있다. 한인 2세인 그가 서툰 한국어로 “내 이름은 이균입니다”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한국이름을 공개했던 장면, 익숙하지 않은 한국 전통의 식재료를 대하는 그의 태도, 힘겨운 경연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그의 도전,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아낸 요리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또한 1대1 대결에서 참치 비빔밥을 선보인 그는 “저는 비빔인간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요리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솔직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가? 미국 사람인가?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밝힌 그는 “요리에 집중하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그냥 긴장을 풀고 한 가지 맛을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비빔밥도 처음 보면 재료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하지만 섞으면 하나의 맛이 만들어진다. 미국도 비빔밥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지만 결국 ‘한 맛’을 위해 노력한다… 제 인생도 비빔밥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방송 섭외가 늘어나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나의 정체성은 더 이상 제약이 아닌 기회로 생각하게 됐다”며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넘나들며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
한식을 기반으로 한 7가지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시아’는 리 셰프의 유명세에 비하면 무척이나 소박한 식당이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이 출입문에 ‘시아’라고 적혀있을 뿐이다. 테이블도 6~7개에 불과해 이미 한 달 전에 모든 예약이 마감된다.
식당 이름은 한국어 ‘씨’(seed)에서 따온 말로 그가 직접 작명했으며 외국인이 발음하기 좋도록 ‘시아’로 표기했다고 밝혔다. 무한한 잠재력을 간직한 씨앗처럼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레스토랑을 가장 잘 표현한 이름이다.
한편 미슐랭 별점을 받는 고급 한식당들이 ‘전통과 현대가 혼합된 퓨전(fusion) 요리에 집중하게 되면서 한식 본연(authentic)의 맛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나도 퓨전은 싫다. 대신 창의적인(creative) 요리라고 말하고 싶다”며 “서로 다른 문화를 그저 섞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며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아’의 코스 메뉴는 호박, 생강, 풋콩 등으로 속을 채운 만두로 시작해 조갯살, 성게알, 젓갈 쌈, 다음은 잣, 순두부, 아보카도를 곁들인 사과 죽과 메릴랜드 게살, 송어알, 두부 튀김을 제주 감귤 식초로 간을 해 김으로 싸 먹는 요리로 이어진다.
이어 물김치와 전복을 곁들인 된장 삼겹살 그리고 메인 요리로 고추장 버터와 함께 나오는 소갈비 또는 현미죽에 조개, 전복을 곁들인 생선구이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 메뉴로 보리차 아이스크림, 배로 만든 젤리, 약식 등 오직 시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디저트가 나온다. 코스 메뉴 가격은 1인당 165달러에서 시작된다.
메뉴는 로컬 식재료를 중심으로 매달 바뀌며 요리와 어울리는 주류도 추천해 준다. 한인들도 처음 보는 멜론 막걸리, 오미자 소주를 비롯해 와인, 사케, 위스키 등이 제공된다.
또한 리 셰프는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친환경 식당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며 “비영리 식당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앞으로 ‘시아’의 정보가 축적되면 다른 식당들과도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픈 키친, “요리 과정 지켜보며 심사위원 된 것처럼…”
아직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예약은 더 힘들어졌다. 어렵게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스타 셰프와의 만남을 자랑하며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있다. ‘마치 넷플릭스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바로 앞에서 요리하는 모습도 보고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눈을 감고 그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방송에서 본 것처럼 그는 완벽한 요리사였다’, ‘나의 선입견을 깨고 한식을 재창조했다’, ‘다소 비밀스런 공간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등 극찬이 이어졌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한인들이 많다”는 질문에 그는 “예약을 하면 된다”고 웃으며 “식당이 협소해 예약이 쉽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시길 바란다”면서 “시아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인사했다.
문의 (202)802-5166
예약 opentable.com
주소 1252 4th St NE
Washington DC 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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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