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처럼
2024-11-14 (목)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은퇴의사
주둥이를 벌리고
푸른 하늘을 삼키고 있다
풀밭에 둘러앉아
배고픔이 흘러내리는 목줄기로
고통의 소리를 질러내고 있다
긴 목은 나팔처럼
그들의 간절함을 붙들어매고
풀잎을 뜯어 입속에 삼키고 있고
몇몇은 다리를 절며 입을 다물고
혹은 날개를 늘어뜨리면서
아프고 슬픈 소식을 세상의
아무에게도 전하지도 못하고 있다
음흉한 짐승들의 습격을 받고 난 후
연못 주위에서 쓸쓸한 모습으로
목을 세우고 하늘을 향하여
소리지르는 거위들
그들을 못 본 채 뒤로 하고
연못 속에 모인 젊은 무리들
수많은 물고기처럼 살이 올라
연못을 부풀게 하는 기술을 터득하였고
식구들을 불러모아
저희끼리 물속에서 끼니를 챙기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풀밭의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배고픔을 외면하는 세상이
거위처럼 슬프다
분주한 길거리의 신호등 옆에서
세상을 절룩거리는 사내
입속에 푸른 집을 짓기 위하여
거위처럼 목을 세우고 있다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은퇴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