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술 다시보기] 정호다완의 미학

2024-11-01 (금)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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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다완(井戶茶碗)에는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스러우면서 당당한 기품을 지니고 있는 정호다완은 찻사발 중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꾸밈이 없고 작위적이지 않으며 그 자체로 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정호다완의 매력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를 다도(茶道)라 칭하며 한 잔의 차로 참선이 시작된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정신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차 문화에서 정호다완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차 다완으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정호다완은 일본에서 이도다완이라 불렸다. 찻잔 안에 작은 샘이 있는 듯하다 하여 일본어로 우물을 뜻하는 ‘이도(井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호다완은 말차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다기이다. 간혹 정호다완을 막사발로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굽이 높고 내부가 움푹 파인 정호다완은 일반 식기로 사용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형의 그릇이며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 없는 기물(器物)이다.

국내 유일의 도자기 분야 국가무형유산인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정호다완에는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다져진 장인의 기상과 힘이 오롯이 각인돼 있다. 전통 발물레의 힘으로 태토를 굽에서 구연부까지 단숨에 끌어올려 성형하는 정호다완은 어떠한 주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몸체의 외연에 남겨진 손자국은 사기장의 몸에 체화돼 있는 혹독한 수련의 흔적이며 고집스레 전통을 고수해온 장인 정신의 산물이다. 김 사기장이 빚어낸 정호다완의 아름다움은 인위적인 기교와 집착을 버린 장인의 진실함에서 비롯된다. 그의 다완은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다. 스스로 이뤄진 멋스러움과 고요한 강인함을 갖추고 있는 그 형상은 겸허와 무욕의 경지에 선 백산 김정옥의 모습 그 자체이다.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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