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없는 청명한 가을이다. 한층 높아진 하늘아래 살랑살랑 스쳐가는 바람타고 햇빛도 춤을 추며 아직은 싱싱한 나뭇잎들을 반짝이게 하고 있다. 태양은 숲의 중간에 우뚝서서 세상의 왕처럼 온 천지를 눈부시게하고 있는 오늘은 지난 일주일내내 구름으로 덮여 잿빛이었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나무 끝에서 서성이던 누런 잎들이 세찬 바람으로 눈처럼 떨어지던 모습에 마음도 허전하고 서글프고 한기가 돌았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던 가을 풀꽃들도 햇빛 속에 보라빛 웃음을 띄우며 온 세상이 밝고 따뜻하며 아름답게만 보인다.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혹독하고 잔인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마음먹기에 따라 영화보다 훨씬 아름답다.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어느 시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내일을 희망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제일 많이 먹는게 무엇일까? 공기일까? 물일까? 살면서 제일 많이 먹는 건 마음이라고 한다. 하루에 수도 없이 마음을 먹는데 우리는 그 마음을 잘못먹어 병이 생기고 나쁜 기운이 세상에 가득찬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세상에서 좋고 깨끗한 것만 먹으려 하고 수돗물은 아예 못 믿어 생수를 마시거나 정수기로 마시고 공기는 공기 청정기로 걸러 좋은 공기를 마시고자 하면서 정작 날마다 수없이 먹는 마음은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 마음을 먹고 사는지 생각해 본다. 세상에서 내 의지대로 마음껏 먹는 것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난 마음하나 제대로 먹지 못해 늘 고민하고 후회하며 살고 있다.
청아한 새들의 노래에 정신이 맑아지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서서히 물드는 붉은 잎들은 예쁘게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에 많이 듣는 음악이 있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협주곡 중 ‘가을’ 이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뉴잉글랜드 지역의 영상을 보면서 그 숲에 가득한 빨갛고 노랗고 주황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단풍잎들이 깔린 포도에 다람쥐가 오가고 있고 옆으로 돌면 계단위에 알록달록 앉은 잎새들, 양탄자가 깔린 것 같은 계곡을 타고 있는 뿌연 숲… 그 위를 흐르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소리가 환상적이다. 행복이 감돈다.
베르사유 궁전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플레브니악(Stefan Plewniak)의 열정적인 연주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듣고 있으면, 풍요로운 수확을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농민들의 유쾌함과 이어지는 악장에서 사냥 시즌 동물들의 긴박감이 느껴진다. 그 당시 그곳 가을 풍경이 상상의 날개를 타고 펼쳐진다. 작곡가, 시인, 화가들의 감수성은 놀랍다. 그들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랑을 전하며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며 잠들기 쉬운 영혼을 깨워준다.
비발디는 바로크 음악시대의 이탈리아 작곡자이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종교음악, 바이올린은 물론 오보에, 플루트, 바순 등 기악 협주곡, 성악곡 등 다수를 남겼으나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의 진가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베네치아 대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아버지가 가문의 명망을 위해 아들을 사제로 키우려고 해서 25살에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가 되었으나 사제에는 관심이 없고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해서 피에타 고아원의 음악교사와 합창단 지휘, 감독을 하면서 고아원의 음악수준을 높이 올려놓았다.
뛰어난 작곡 솜씨로 1712년 <화성의 영감> 12곡 작품집을 내고 100여개의 기악소나타, 500여곡의 협주곡을 작곡하고 1723년 소네트가 곁들인 ‘사계’를 작곡하며 널리 알려졌고 40곡의 오페라작곡가로도 명성을 남겼다. 그러나 만투가 궁정악장 시절에 만난 제자, 여가수며 뮤즈였던 안나 지로와의 사제간의 스캔들로 1737년 추기경에 의해 오페라를 금지당하고 베네치아에서 쫓겨난 후 그는 “나는 사랑과 베네치아를 맞바꾸었을뿐이다” 라고 했다.
후에 거기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전 재산을 투자했던 오페라 공연의 무산등 파산상태로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다가 오스트리아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다. 비발디는 인생의 사계를 온 몸으로 맞은 생애를 산 것이다.
가을이 짙어간다. 어제는 행복했던 마음으로, 오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일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살면 이 가을에도 풍성함과 기쁨의 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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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