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가이드를 졸졸 따라가는 걸 보며 참 재미없겠다 싶었다. 그때는 나도 그럴 줄 몰랐다. 그저 마음이 가면 몸은 당연히 따라오는 줄 알았다.
서울 촌년인 나는 수학여행 때 파도가 치는 바다를 수영장처럼 걸어 들어 갔다가 소금물에 내팽겨쳐졌다.
대학교 첫 여름에 밤 새운 완행열차는 알 수 없는 외계인 사투리가 들리는 먼 곳으로 데려갔다. 모기에 뜯겨 멍게처럼 부은 민박집에서 맛없고 비린 꽁치찌게와 멀건 카레국을 눈물로 먹으며 총무년이 가진 기차표를 훔쳐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뒤로는, 체력이 딸리고 적당히 편한 걸 좋아하여 내 대신 다녀 온 전문가들의 글을 읽으며 여행작가로 꿈은 바뀌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박물관과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곳은 거의 다녔다. 미국에서도 이럭저럭 20여개 주는 다닌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다른 나라는 몸과 마음의 걱정이 많아져 자유여행 보다는 좋은 계절에 2개국 정도의 패키지 여행을 택해 여러 곳을 다녀왔다.
그동안 별 탈 없이 같이 다니던 나의 생명줄인 남편이 이제는 짐 싸고 풀고 구경하는게 버겁고 재미 없고, 어디를 가나 성당, 교회, 광장, 궁전, 박물관 같은게 그 나물에 그 밥이란다. 그보다는 백수처럼 슬리퍼 끌고 동네나 시장을 어슬렁거리거나, 마을 버스나 전차를 타고 멍 때리며 다니자는 말대로 한 나라만 가든지 아니면 가고 싶은 곳에서 1달 살기로 바꿀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무릎 상태가 괜찮으니 올해까지는 남이 차려 주는게 최고라며, 윽박지르고 달래서 바쁘고 힘들다는 서유럽 4개국을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는 튼튼한 이들과 함께 2주 동안 새벽에 출발해 별을 보며 빠르게 모든 것을 외관만 돌아보았다.
개인적 감상으로 유럽은 멋있지만 조금은 답답하고 낡았고 여유롭지는 않은거 같다. 예전에 그리스 로마 때는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풍요하여 관능적이지만 위생적인 문화도 발달했지만, 종교가 최우선이였던 중세시대에는 신을 위한 성당, 교회, 사원은 끝없이 화려하고 굉장하지만, 육체와 관련된 것은 세속적이라 여겨 비위생적이고 더러워서 전염병이 많았다고한다.
유럽의 옛 건물은 왕이나 귀족은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들어오니 1층은 천장이 높았으며, 귀족은 2층에서 지내고 꼭대기나 다락은 하인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가장 비싼 상점이 1층에 자리잡고 관광객을 모으며 비좁은 옥탑방도 전망이 좋다며 비싸게 세를 받는다. 건물 안에 화장실이 없어 위에서 버리는 오물과 길거리 똥을 피하기 위해 우산과 하이힐이 생기고, 냄새가 나는 몸을 감추기 위해 진한 화장과 향수가 생겼다고한다. 그래선지 대부분의 화장실은 좁고 작았다. 계단을 타고 끝없이 내려가면 화장실은 달랑 1개나 2개 뿐이고, 거의 다 유료인데 동전 교환기 옆에는 직원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으니 마음놓고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오래된 옛 성을 고친 호텔은 멋있지만 낡고 삐그덕거리며 어두웠다. 유명한 성과 성당을 며칠째 봐서인지, 나중엔 로비가 환하고, 온수가 팡팡 나오고, 전자렌지와 전기주전자가 있고, 화장실이 즐비하고, 푸짐한 과일, 야채, 달달한 도넛, 커피인심이 넉넉한 미국식 호텔이 그리웠다.
밤 새워 새벽에 도착한 도착한 런던은 예상외로 날씨가 좋았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점잖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되고, 신사적이며 예의를 갖춘 절개있는 낡은 선비 같지만, 때로는 화끈하게 카톨릭에 맞선 성공회, 산업혁명, 골프, 비틀즈로 해가 지지않았던 대영제국이었음을 느꼈고, 영국 음식이 형편없다는데 우리가 간 생선과 감자 튀김 맛집는 예약하지 않으면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맛있다.
프랑스 파리는 작은 도시로 자유로우나 변덕 심한 기분파로 남이 뭐라든 개성을 드러낸다. 올림픽 전이라 공사중이라 막은 곳이 많았고, 비가 내려서인지 약간의 찌린내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이상하지만 그런대로 어울리는 철로 만든 에펠탑 전망대는 생각보다 크고, 세느강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화려해서 한번은 와 볼만하다.
별미라는 작은 달팽이를 핀으로 뽑아 먹으며 푸짐한 한국의 골뱅이 파 무침과 비교해 보았다.
스위스는 알프스 구석구석에 작은 기차와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산과 마을이 양파 같이 까도 까도 나타났다. 융프라우 설산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산꼭대기 매점 매출 1위인 신라면을 먹어야 케이블카 멀미가 가라앉는다. 눈 내리는 겨울 내내 집안에서 수공업으로 시계나 만능 칼과 목공예품 햄과 치즈를 만들고, 날쌔고 용감한 스위스 용병은 지금도 로마 바티칸을 지킨다.
이탈리아는 허풍을 떨어도 웬지 멋과 맛이 있어 친근감이 있다. 패션과 공업의 도시 북부의 밀라노는 멋장이들이 많았고, 중부의 토스카나에서는 와인농장과 사이프러스 숲길을 걷기도 했다.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곤돌라 뱃사공은 느끼한 구렛나루로 여인의 지갑을 열게한다. 로마는 역시 로마여서 올 때마다 괜찮았다. 남부의 나폴리 항구 허름한 밥집에서 푸짐한 아줌마가 만든 산 같이 쌓인 생면 파스타에 놀랐지만, 모두들 미국의 명예를 걸고 코를 박고 다 먹었다.
카프카 섬에서는 레몬 맥주에 취해서 피자와 문어 샐러드를 즐기면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방방뛰며 놀았다. 마지막 날에야 일찍 돌아 온 고성호텔에서 석양과 함께 만찬과 노래를 즐기니 그동안의 고단함이 사라지며 아쉬워하면서 부질없는 언젠가의 다음의 만남을 약속해 본다.
여행에서 돌아와 몇 달 뒤에 별로 재미가 없는 파리 올림픽을 보며 어쨌건 그때도 좋았다며 추억에 잠긴다. 이제는 자유로운 여행을 간다면 반대로 가고싶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아닌, 춥고 어두운 흑야에 함박눈을 맞으며 덜덜 떨다 돌아와 노란 불빛 아래 따뜻한 스프와 대구탕을 먹으며 무뚝뚝하지만 옅게 숨겨진 웃음을 가진 유럽 친구를 만들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여행을 할 수는 있을까? 이제는 몸이 가야 마음도 갈 수 있다면서 이리저리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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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