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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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

2024-10-16 (수) 이중길 은퇴의사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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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로 굳게 닫혀있는 두 구멍을
열어줄 수 있다는 달팽이
햇빛이 밝은 이웃의 말문을 받아
어둠의 구석을 밝히고 싶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마음을 열어 놓고 남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안테나를
쫑긋이 세우고 있는 달팽이

내 몸의 사방에서 나사가 풀려
흔들거리는 세상의 끝처럼
어지러운 귓구멍 속에 깊이 끼워 넣었다

이제는 남의 말에 귀를 세우며
부처님의 귀를 닮아 가면서
조용한 마음을 다시 품을 수가 있을까


웃는 얼굴로 상대를 마주하면
세상의 귀가 밝아진다고 말하는
진심어린 친구 앞에서
두 귀를 무시한 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얼마나 많은 진실들을 흘려보냈나

귀가 어두워지면 남을 괴롭히는 것
귓속에 깊이 묻어둔 달팽이
어둠의 굴속에서 귀뚜라미처럼 울고있다
세월이 빼앗아 가버린 슬픈 귀

<이중길 은퇴의사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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