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조정래 작가의 한강? 이었다. 워낙 대작이라 ‘세익스피어만큼 유명한 영미 작가가 아니면 그 방대한 책을 읽을 수 없을 텐데’라는 생각도 잠시, 한강은 책 제목이 아니라 1970년생 젊은 여류작가다.
노벨문학상은 생존 작가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반드시 장수해야만 받을 수 있다는 상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단 몇 권의 책으로 기라성같은 세계 유수의 작가를 물리치고 받았다는 건 한국의 위상은 물론이고 K 한류의 바람을 타고 전 세계인의 가슴에 이제는 문학이라는 두 글자로 정점을 찍어주었다.
사람이나 어떠한 사물에 붙여진 고유한 이름은 그 안에 담긴 많은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한강은 연로한 한승원 작가의 딸로 외자를 사용해 강이라 지었다. ‘강’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범접할 수 없는 문학가의 자질이 숨겨져 있고 문학인의 강 같은 피로 강렬하게 키워진 셈이다. 이름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별명으로 그녀를 불렀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름뿐 아니라 외모에서 풍기는 단아한 문학적 소양이 오히려 그녀를 내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한마디로 ‘한강’은 문학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그 이름값을 이번에 톡톡히 했다고 본다.
한강의 기적을 세우기 시작한 시점에 ‘한강’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한강은 9살 무렵 5.18 사태로 인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고 그 충격적인 모습에 의문을 가지며 그녀가 성장하면서 각인된다. 이를 바탕으로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광주를 무대로 한 소년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는 비통한 삶, 인간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공적인 폭력이 얼마나 폭발적인 사적 폭력으로 점철되는지 그리고 죽음 뒤 애도의 진정성 등 인간의 연속된 삶과 죽음의 반복을 여러 시점으로 나누어 피가 낭자해 피하고 싶지만, 결코 눈을 돌릴 수 없는 시적인 산문형으로 기묘하게 표현했다. 1년 반 동안 집필하며 거의 매일 울며 글을 써 세상에 내놓았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불운에 동참하며 검열 대상이 된다.
‘채식주의자’ 또한, 그녀가 여자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이었고 여자이기에 상처받아 정말 식물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건 역시 약자에 대한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인간 이하로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시인으로 한국 문화계에 등단한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배경에 정치적 트라우마를 그려내며 시적 감성이 소설에 곁들여 아름답게 표현되었다고 한림원은 설명했다.
4·3 제주항쟁 등 한강의 역사의식 속에 집약된 민주화 항쟁은 한국 역사 속에 숨겨져 꺼내기 힘든 주제를 펜의 날카로운 힘을 빌어 죽임을 당한 억울한 망자와 그 앞에 선 산자의 끊기지 않는 고통의 연결고리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치스러운 생각이지만, 삶의 가치에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은 지구가 당장 내일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담담함이 내재 되어있다고 자신하는데 한강의 담담함은 지적 자존감을 떠나 세계를 감싸 안은 천지인이라도 되는 걸까?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면 인터뷰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가 한강을 보는 세계인의 눈은 역사 속 민주항쟁으로 쓰러진 젊은 한국인들의 정의로운 피가 오늘날 한국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의 주장을 그때그때 풀어내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려고 소리 높여야 알아주는 세상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만 세상이 옳게 돌아간다고 믿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온건한 생각은 온 국민이 기뻐하는 일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한국과 전 세계가 들썩이는 이 시점에서 ‘전쟁통에 내가 뭐라고 나의 기쁨을 위해 축배를 들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이 말은, 햄릿이 남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이 세계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회자되며 깊이 새겨질 말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자랑스러운 한강이고, 닮고 싶은 한강이고, 한국인 모두가 되어야만 하는 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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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