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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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부대 할머니들의 열정

2024-10-14 (월)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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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던 어제의 날들이 끊임 없이 모여 그 시간 속에 많았던 크고 작은 일들을 반추하며 우리들은 쉼 없이 또 다른 미래를 향하고 있다.

신문을 보면 이 지역사회에 올해 반세기의 해인 50주년의 해를 보내는 일반 단체와 교회 공동체가 유독 많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기름진 이 넓고 광활한 땅을 찾아온 이민 역사가 같은 시간대에 있었기에 50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도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메릴랜드 온리에 있는 우리 성당도 예외일 수가 없다. 개인의 삶도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고, 둘 더하기에 또 하나는 셋이 된다. 그리고 높을 곳을 오르려면 사다리를 놓고 한 계단씩 조심해서 올라가듯 우리 성당 공동체도 그런 시간 속에 교우들의 기도와 땀, 열정 속에 이룬 결과다. 그 성취감 속에 50이라는 숫자의 앞을 지나가고 있다.
우리 성당은 외곽지대 변두리, 끝이 잘 안 보이던 옥수수 밭이었다. 여름날엔 시원하게 부는 바람 속에 옥수수 겟꼬리가 바닷물처럼 출렁이던 벌판이었다. 그 푸르던 벌판 위에 정교하게 쌓아올린 벽돌과 그 지붕 위에 드높이 올라간 하얀 십자가, 너무나 보기 좋은 우리 성당 전경 이다.


우리 성당 터는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미사를 드리고 문밖을 나오면 높은 지대라 그런지 바람이 없는 날도 이마에 스치는 시원한 촉감과 맑은 공기는 오아시스에서 마시는 그 한방울의 물맛과 같다. 내려다보이는 넓은 공간은 지금도 집을 수십 채 지을 수 있다. 청량한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푸른 잔디밭 위로는 사슴 가족들이 한가히 놀고 있는 모습은 환상을 넘어 무엇이라 표현 할 수 없는 그냥 그대로의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늘 그런 광경을 볼 때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한쪽이 뜨겁다. 어찌 하느님께서 이런 좋은 터를 우리들한테 안배해 주셨을까!

어느 역사의 흐름 속이든 희로애락은 있게 마련이다. 이상과 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살아가는 현실세계에서는 경제력이 필수 조건이다. 그 경제력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들이 계셨다. 우리 성당 50년 역사에 전설이 된 김치부대 할머니들이시다.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 올리는 정성으로 지치지도 않으시고, 쉬지도 않으시고, 불철주야 그저 기쁜 마음으로 김치장사에 모든 것을 다 바치신 분들이다. 온리 성당으로 이사 오기 전 칼리지 파크에서부터 하신 김치사업의 한 주간 매상이 오천불이다. 소문난 김치 맛에 이 지역 한인 가게는 김치가 안 팔린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40-50년 전 한 주에 오천불의 화폐 가치는 대단한 수준이다. 할머니들은 그 일을 해내셨다.

이제 곧 미국의 아이들 가을 축제인 할로윈 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할로윈 축제가 끝난 후 어느 날 성당에서 젊은 자매님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사연은 이러 했다. 며칠 전 할로윈 데이에 글쎄 아이들이 김치부대 할머니 복장을 준비해 입고 김치 만드는 이야기를 하며 그것을 주제로 삼아 할로윈 축제를 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열 살 정도의 아이들이 어떻게 김치부대 할머니들을 알고 저희들 스스로 주제를 선택한 것이 가상하고 또 가슴이 찡 했다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할머니들은 김치장사를 그 옛날 칼레지 파크에서 하신 것인데.

우리들은 한글 창제를 하신 세종대왕이나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물리치신 이순신 장군의 획기적인 업적을 역사 공부나 대중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김치부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책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김치할머니들을 주제로 선택했을까? 너무 기특하고 역시 우리들의 후손임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김치부대 할머니들의 존재감이 50년 역사와 함께 확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분들의 용기와 힘과 끈기에 우리 성당 많은 형제, 자매님들은 의논 한마디 없이 그저 통하는 마음으로 지어드린 이름이다. 계급장도 없는 김치부대 할머니들. 지금은 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곁으로 되돌아가신 분들이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 일찌감치 자리 잡은 김치, 어쩔 수 없는 밥상 위의 별 자리, 스타이다. 이제는 격이 한층 더 높아져 세계의 스타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환상의 우리 성당 터전, 대박났던 할머니들의 김치사업, 후손들의 축제의 주제로 선택된 먹음직스러운 김치, 우리 성당 50주년과 함께 한 우렁찬, 그리고 멋진 삼박자다.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시간 또한 희망이다.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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