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글날 소고(小考)

2024-10-08 (화) 정성모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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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제578돌이 된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480주년이 되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근거로 하여 음력 9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98년 전 당시의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1월 16일을 한글날로 제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건’이 제정되면서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하여 지금까지 75년째 내려 오고 있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1443년(세종 25년)에 세종이 창제한 <문자의 명칭>을 말한다. 두 번째는 3년 후인 1446년(세종 28년)에 훈민정음 28자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 등을 해설하여 세상에 반포할 때에 찍어 낸 <판각 원본의 제목>을 말한다. 세종은 그 원본의 서문을 직접 작성했다. 서문에서 자신이 직접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이유를 밝혔다.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民)을 가르치는(訓) 바른(正) 소리(音)'이며, 28개의 낱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리글자이다.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에 편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세종은 내시들이 “주무시라”고 성화할 때까지 책을 읽고 새벽닭이 울 때(四鼓) 일어나 다시 공부하니 잔병치레가 많았다. 평생 안질로 고생했다. 그는 평생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백 번 읽고 사서(史書)를 서른 번 읽었다.

세종은 백성을 가르쳐야 다스리기에 편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무식하며 부지런한 사람이다.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무지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 원리가 기득권을 위한 게 아니고 애민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백성을 위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한 나라의 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글자이지만,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직후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반대 상소문’ 이다.

그는 우리의 문자를 만드는 것이 중국을 사대(事大)하지 않는, 중국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훈민정음 창제가 조선을 오랑캐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선조들의 지혜가 한문에 담겨있는데 새 문자를 사용하면 그 지혜를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의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며, 한글은 ‘큰 글’이란 뜻이다.
한글은 글자를 쉽게 조합하거나 축약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정보전달의 효율성이 뛰어나다. 정보화 시대의 생명인 콘텐츠의 양과 속도에서 한글의 우수성과 차별성이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읽기는 쉬우나 맞춤법, 특히 띄어쓰기 원칙에 맞춰 쓰기는 어려운 글자이다. 한국어 연구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의 전문 교수도 띄어쓰기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문장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보다 쉽게 띄어쓰기를 할 수 있게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모든 백성이 쉽게 읽고 올바르게 쓸 수 있어야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띄어쓰기는 불과 140여 년 전에는 없었다. 훈민정음에 없는 띄어쓰기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가 그 주인공이다. 1877년 그가 쓴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이 띄어쓰기의 효시이다. 우리말에 본격적으로 띄어쓰기를 사용하게 된 것은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부터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이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食爲民天,식위민천)라며 토지 제도에도 많은 고민을 쏟았다. 놀라운 사실은 임신한 노비에게 100일의 산후 휴가를 주고 남편이 산모를 돕게 했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보다 더 좋은 복지국가였던 같다.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세종에 대한 추모의 정이 더욱 새롭다. 그분의 많은 위업이 한글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

<정성모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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