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옷과 음식과 거처할 집과 일컬어 의식주라고 한다.
그런데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구분한다면 위에 것들은 물질에 불과하고 생각의 사고는 정신적인 것인데 인생살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정과 한이 아닐까 보다.
‘정 주고 떠나지 마라’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 많은 인생’이란 말들을 수없이 듣고 살다보면 정과 한은 옷감에 씨줄과 날줄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 조각의 천을 상하와 좌우로 연결된 실들이 짜여져 만들어져 가듯 인생도 정과 한이 얼키고 설켜서 한 세상을 수놓고 가는 파노라마 같다. 인정. 사정 애정, 모정, 부정, 우정과 원한, 애한, 정한, 고한, 병환 등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사항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많은 인심들이 정들었다가 헤어지고 한이 되어 일생을 그리워 하고 잊지못해 한이 되어 눈을 감지 못하고 남이 감겨 주어야 하는 예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보이는 것도 아니오, 물려 줄 수도 없는 것인데 애타게 그리워 하고 마음과 고생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특히 한민족을 정과 한이 유별나게 많은 민족이라고 함은 그 어느 나라 보다 시련을 많이 겪은 민족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그마한 땅에서 수많은 시련을 겪은 결과가 아닐까 여겨진다.
자녀를 갖기 위해 정성으로 백일기도를 하는 모정, 합격을 위해 그 추위를 무릅쓰고 시험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정은 어느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한이 맺혀 자살을 하는 어느 여인의 슬픈 이야기와 남편과의 불화로 자녀들과 동반자살을 감행하는 용기는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모두가 정서불안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비인간의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정이란 다른 말로는 애정이며 순수한 사랑이며 지극한 돌봄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결코 잘못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헤어지거나 어긋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인데 제대로 인격형성이 되지 못한 부모들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자녀들의 성품이 어긋나고 불화음이 겹쳐 사회문제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옛 어른들이 ‘심사숙고’ 란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고어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다시금 곰곰이 되새겨 볼 일이다.
‘빨리’라는 중독과 ‘경쟁’에 밀려 깊히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지 않고 쉽게 아니 가볍게 결정해 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유대인들은 ‘어떤 물건을 사려고 하면 세번 생각을 한다’ 고 한다.
첫번에는 좋았는데 두번째는 ‘좀 그렇다’ 세번째는 ‘아니올시다’라는 결론을 얻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첫 눈에 반한다.’ 그런 것들은 쉽게 싫증이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물건은 버릴 수 있지만 사람은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짊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정주지 말고 떠나라!’는 명언이 생겼는지 모른다.
정과 한을 외면하고 살수는 없지만 초연하고 사는 지혜자만이 고매한 인격이 아닐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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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명 매나세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