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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는 어떤 기준으로 침·뜸 선택할까(2)

2024-10-02 (수)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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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다 보니, 한의학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 환자들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외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인과 전혀 다른 병명으로 내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 보니, 모두 비슷한 이유로 한의원을 찾는다.

의학적인 고려만 한다면 같은 질병으로 내원한 외국인 환자와 한국인 환자는 비슷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의학적 기준 외에도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보니, 한의학이 낯선 이들에게는 같은 질병이라도 다른 치료법을 적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세 번째 고민: 문화적 고려·익숙함과 낯섦


불과 20여 년 전과 비교해도 미국에서 한의학의 위상은 확실히 높아졌다. 많은 할리우드 스타나 올림픽 선수들이 SNS에 침이나 부항 같은 한의학 치료를 받은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여러 대학에서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관련 학과가 개설되면서 대중매체와 학문 분야에서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한의학의 이론, 치료 원칙, 치료 방식은 대다수의 외국인들에게 익숙하기보다는 낯설고 불편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현대의학을 하는 의사들과 물리치료사들이 ‘드라이 니들링(dry needling)’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임상에서 사용하면서 침 치료에는 많은 이들이 익숙해졌지만, 생약을 섞어 만든 독특한 맛의 한약 치료나 몸에 화상 자국을 남기는 뜸 치료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감이 있다.

따라서 한약 치료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나 내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라도, 의학적 고려 이전에 그들이 속한 문화적 특성을 먼저 고려하여 우선적으로 선택할 치료법을 고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꼭 한약으로만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면, 불편함과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이국적인 치료법보다는 그나마 익숙해진 침 치료를 통해 우선 치료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치료의 지속성이 단기간의 효율보다 더 중요한 질병을 가진 환자라면 이러한 문화적 고려는 더욱 필요하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라도 환자에게 지나친 거부감을 일으켜 충분한 치료 기간을 채울 수 없게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 충분한 효과를 보게 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법이다. 반대로 ‘선단공포증’처럼 날카로운 물체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 침 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라면, 침 치료가 더 효과적인 질환이라도 처음에는 한약이나 부항 요법 같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네 번째 고민: 경제적 고려·가치의 차이

마지막으로 최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한의사로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환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차이이다. 이는 곧 경제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투자한 것 대비 가장 효율적인 치료를 받기 원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효율이 좋다’는 부분이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효과의 신속성에 있고, 한약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효과의 지속성에 있다. 반대로 한약 치료는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침보다 훨씬 오래 걸려 신속성에서는 불리하다. 따라서 당장 아픈 몸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침 치료가 보여주는 즉각적이고 신속한 효과가 그 무엇보다 큰 가치가 있다.

설사 완치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침이 한약보다 길더라도, 일단 침을 계속 맞으면서 몸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는 침이 훨씬 효율적인 치료법이 된다. 반대로 환자의 고통이 크지 않지만 수년째 지속되는 질병으로 마음이 지치고 치료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분들에게는, 순간적인 효능은 더디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발 없이 꾸준히 질병을 근본부터 호전시키는 한약 치료가 훨씬 더 ‘가치’ 있는 치료법일 수 있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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