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른 천애의 고도에 무슨 까닭으로 성곽을 쌓고 집을 지었을까?
▲6월25일: 지난밤 11시30분에 마이애미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새벽 6시 무렵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태평양 해안(Miraflores) 호텔에 도착하니 체크인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짐만 맡겨놓고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를 향해 나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었지만, 마치 한국의 70-80년대를 보는 것 같았는데 30-40년은 됐음직한 대우의 작은 자동차들이 매연 하나 뿜지 않고, 그중에는 “대리운전” 사인등을 그대로 붙이고 택시로 혹은 자가용으로 도로를 질주하며 다니고 있고 현대 기아 엘지 등의 사인을 흔하게 볼 수 있어 흐뭇했다.
아침 8시 무렵 도착한 광장은 15.6세기 스페인 풍의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하나하나에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답고 섬세하며 기묘한 조각과 인물상(대부분 성경에 나오는)들로 채워져 있음에 경이로울 뿐이다.
거리는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아직 한가로웠는데 곳곳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관광객들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 같았고, 반듯하게 돌로 포장된 길은 중세의 건축물과 잘 어울렸고 운치를 더하며 깨끗하였다.
페루비안 브런치를 먹고 우린 유네스코에 1991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Roman Lima Chethedral 안에 있는 성경 속의 예수와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로 꾸며진 수많은 작품과 조각들을 감상하고, 몇 블럭밖에 있는 또 다른 Convent el San Francisco 수도원으로 발을 옮긴다.
이 수도원 역시 웅대하고 장엄한 조각들과 성상들로 가득 차있으며 아름다운 작은 정원과 오래전 수도사들이 사용했던 도서관이 잘 보존 되어 있고,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한 이곳엔(The catacombs) 많은 해골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그 수가 3만 5천을 헤아리며 대부분 수도사들이란다. 3시간 정도의 과거로의 탐방을 마치고 광장으로 돌아오니 그새 많은 관광객들로 분주하고 많은 고풍스런 건물 가운데 있는 대통령 궁 안에서는 요란한 나팔소리와 함께 근위병 교체식이 행해지고 있다.
▲6월 26일: Palominos Island로 바다사자와 펭귄을 관찰하기 위한 탐험.
▲6월27일: 리마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의 주요 베이스 켐프가 될 쿠스코로 이동키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해발 11,152ft /3,399m, 우리가 생활하는 워싱턴 지역이 해발 30ft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지금 우리가 발을 내딛은 이곳의 높이가 과연 얼마나 높은지 실감이나 날까. 백팩을 메고 호텔이 있는 계단을 몇 개만 올라도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나는 듯하다. 체크인을 하고 로비에 준비된 코카차를 마시며, 세계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페루의 쿠스코 (고대 잉카의 수도)에 내가 있다는 흥분을 다독거리며 여장을 풀자마자 우린 다시 광장으로 향한다.
성당을 제외하고 고작 이삼층으로 만들어진 모든 건축물의 지붕은 지중해 풍의 붉은 황토기와로 덮여있어 매우 이국적이며, 또한 잉카인들이 설계한 도시의 모든 길들은 탄탄한 돌로 만들어져있는데, 어디 하나 부셔져있거나 보수 흔적이 없어 보였고, 성곽처럼 웅장한 많은 건물의 아랫부분은 커다란 돌을 쌓아 만든 잉카인의 축조이고 그 위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증축하여 독특한 쿠스코풍의 헤리티지를 만들었다 한다.
▲6월28일: 새벽 2시 반에 눈을 떠 간밤에 챙겨놓은 백팩을 걸머지고, 호텔 프런트 직원조차 깊은 잠에 빠진 컴컴한 새벽에 세 명의 사내가 살금살금 문밖을 나서니 골목길을 유랑하는 차가운 겨울 공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우리 일행을 태우러 온 현지 여행사의 버스에 올라 타 어슴푸레한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잠들어있는 십수 명의 이방인들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앉자마자, 버스는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돌길을 덜그덕거리며 거칠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소 소란함에 잠에서 깨니 버스는 마추픽추를 연결하는 잉카레일 역(Ollantaytambo)에 도착하였고 갑자기 많은 인파 가운데로 잉카의 분장을 한 한 무리의 인디오 남녀가 그들의 악기와 신명난 춤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지붕까지 유리로 전망하기 좋게 시원하게 만들어진 기차는 협곡 양편에 즐비한 잉카의 용사들을 닮은 듯한 안데스의 우람한 산들을 사열하듯 긴 기적과 함께 궤도 위를 달려 마추픽추의 산 아래(Aguas Caliente)에 도착한다.
우루밤바 강의 맑고 차가운 강이 깊은 계곡 사이를 거칠게 흐르는 이곳은, 가파른 산중턱에 있는 마을로 장터와 많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있는데, 대부분 기념품과 알파카 털로 만든 스웨터 비니 숄더 등을 팔며 삶을 영위해 가는 듯 보인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비포장이며 가드레일도 없는 가파르고 아찔하여 오금이 저리는 천리 낭떠러지 계곡(아마 수년에 한번 꼴로 버스 추락으로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있음에도)을 발아래 두고 구비구비 험준한 산길을 운전사는 능숙하게 거침없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데 저 멀리에서 점점 크게 다가오는 거대한 산봉우리들의 황홀한 자태에 두려움도 곧 사라지고 만다.
여섯 시간이 지난 열시 무렵이 되어서야 또 긴 행렬을 따라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자 한낮의 뜨거워지기 시작한 태양을 머리에 이고 돌계단 하나하나를 가쁜 숨을 내쉬며, 마치 영겁의 세월을 기다렸다는 듯, 곧 마주치게 될 그 찰나의 기대감에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가리워진 나무들의 장막이 갑자기 걷히더니 나는 어느새 오페라 극장안의 발코니에 앉아있고 장엄한 서곡과 함께 무대 안에 숨겨진 잉카의 고도(高都), 마추픽추가 마침내 신비스런 베일을 벗고 당당하고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부터인가 막연하게 꿈꾸던 나의 이상향. 가보고 싶은 곳. 먼 나라에 있을 것 같아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 여겼던 마추픽추에, 내 발이 그들의 땅을 디디고 서있고 내 호흡이 내 영혼이, 칠백년이 되었을지 수천 년이 되었을지 가늠키 어려운 그 잉카인의 문명과 맞닥뜨린 가운데, 거대한 파도로 밀려드는 감동으로 혼미한 가운데 그들이 건설한 거대한 미궁의 고도 안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천애의 고도에 무슨 까닭으로 성곽을 쌓고 집을 짓고 계단식 밭을 일구고 물길을 만들고 살고자 했을까.
아직도 고고학자들도 언제 왜 이 깊고 높은 산정에 어떻게 그 큰 돌담을 점토하나 사용치 않고 각을 내어 쌓았으며 밭을 경작하고 생활을 위해 수로를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의견이 다르며 명확하지 않아 더욱 신비한 잉카인의 세계에 머물며 상상 속에서 그들을 만나고 숨결을 느껴보고자 한다.
험준한 고봉에 둘러싸인 마추픽추에서 바라본 전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손이 닿을 듯한 곳에 우뚝 선 고봉은 만년설에 덮여 있고, 다른 산봉우리엔 하얀 구름이 내려오다 사라지길 거듭하며 그토록 파아란 하늘에 쨍쨍히 빛을 발하여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태양은, 과히 그들에게는 신으로 여겨졌을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6월 29일: 전날 마추픽추 등정의 흥분이 끝나기도 전, 우리는 또 새벽 2시경에 잠에서 깨어 오늘 가게 될 새로운 세계에로의 모험을 계속하기 위하여 차가운 겨울바람(이곳 페루를 비롯 남미국가는 6월이면 초겨울이며 아침기온은 40’F, 낮에는 6-70’F정도여서 연중 페루를 여행하기엔 가장 좋음)에 옷깃을 추스리고, 네 시간 정도 소요되는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잠에 빠진다.
유일한 아시안인 우리는 다른 탐방객들과 어울려 도중에 제공되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주된 페루비안 아침 뷔페를 먹고, 차창으로 보이는 페루의 농촌 풍경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웅대한 산야를 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산 아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날씨는 바람이 거세고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 더욱 춥다. Vinicunca(Rainbow mountain) 5,200m/17,100ft, 우리의 일생 중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우리는 챙겨온 패딩 재킷의 지퍼를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오늘 함께 할 일행과 기념촬영도 하며 등반시 유의사항을 듣는다.
나무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등성이에서 때때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사나이들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그런 심정으로 산행을 시작하니 왼쪽은 검붉은 산이요, 오른쪽은 그야말로 히말라야의 어느 산봉우리처럼 흰 눈으로 덮여있어 구름이 내려왔다 걷히길 반복한다. 그 거대한 산 밑의 낮은 구릉 위에는 야생마들이 갈기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떼지어 달리고 다른 쪽엔 라마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잉카의 후예들은 등반객을 태운 말을 끌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다시피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이 마치 다른 별나라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한 삼십분 걸으니 도무지 숨이 차서 걷기 힘들고 이참에 안 타본 말도 타볼 겸 옆에 걷는 알렉스를 꼬드기니 본인도 힘들어 하던 차라 흔쾌히 동의해 말에 올라타 이제는 카우보이가 된마냥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산정에 다다르게 된다. 이른 아침과는 다르게 화창하게 겐 날씨에 드러난 정상에서 바라본 무지개 산은 말 그대로 일곱 색을 가진 산등? 아니 끝없이 이어진 웅장한 산맥을 따라 채색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게 하였다.
어제 본 마추픽추와는 완전히 다른 이 풍경을 보고 누가 어느 게 뛰어나다 말할 수 있겠는가. 풀 한포기 없는 이 고산엔 철을 비롯한 많은 미네랄이 바람과 햇볕에 오랜 세월동안 노출되어 이와 같은 색채를 띈다하니, 신이 설계하고 대자연이 빚어낸 이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광경에 그저 감탄의 한숨만 내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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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김/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