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History), 가슴 뭉클한 말이다. 그 앞에 서면 먼 조상을 만난 듯 한뿌리에서 오는 푸근함이 있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면면히 지켜내려 온 선조들의 정신의 고매함을 본다. 우리 역사 안에는 수많은 외침을 물리친 국난극복의 강인함이 있고, 아름다운 문화가 있고, 나라를 빼앗긴 아픔이 있고, 일제강점에 저항한 독립운동의 기개가 있고, 친일파의 부끄러움이 있고, 동족 전쟁의 고통과 분단의 상처가 있고, 한강의 기적이 있고,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고귀한 희생이 있고, 따듯하고 정겨운 인간애의 스토리가 있다.
역사는 흘러간 강물처럼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역사는 오늘 우리의 삶이다. 역사는 우리 민족과 나라를 형성케 한 존재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목적은 현재를 살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다. 초중고 학교에서 국사(國史)를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이다. 요즘 올바른 역사관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개밥의 도토리처럼 되어가고 있다. 참 망연(茫然)하다.
최근 역사관 논란을 빚는 사람들이 국가의 주요 공직(公職)에 임명되었다. 1945년 광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일제 당시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 주장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이 장관에 임명되었다. 고위 공직자 임명에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의 적용이 무너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뉴라이트(new right)의 역사관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조선인이 못나고 열등해서 빼앗긴 것이지 일본의 강제 침탈이 아니라는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론과 궤를 같이한다.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 주장의 핵심은 친일파를(일제강점기 일본에 적극 협력 친일 매국한 사람들, 반민족행위자 등) 역사 세탁(洗濯)하려는 주장이다.
만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 되면, 독립운동 선열들은 국가(일본)에 저항한 폭력주의자 테러리스트가 되고, 친일파는 국가(일본)에 협력한 모범 국민이 된다. 친일파라는 역사의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립운동 선열들과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완전히 뒤집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벌써 지난 8.15 광복절에 맞추어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우리 민족의 우뚝한 독립운동 지도자가 졸지에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역사가 뒤집혔다. 이야말로 뉴라이트에 의한 역사 테러다. 역사 퇴행이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우리 민족 누구도 자신의 국적이 일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와 3위 남승룡 선수의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다. 환희와 감격의 자리인 올림픽메달 시상대에서 손기정 선수는 월계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고, 남승룡 선수는 어떻게든 일장기를 가리려고 최대한 바지춤을 명치끝까지 올린 채, 모두 풀 죽은 얼굴을 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재판정에서 “나는 한국인이다. 독립을 원한다”고 항거하며 생애를 마쳤다.
강제로 빼앗긴 물건의 소유권은 비록 힘이 없어 빼앗겼을 지라도 빼앗긴 사람의 것이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강제로 강탈해 간 문화재들이 속속 해당 나라로 반환되고 있다. 위력과 강제로 맺은 조약은 무효이며, 이러한 조약으로 늑탈(勒奪)한 주권이나 국적은 일본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친일파를 제외하고, 모두 황국신민을 거부하고 대한(大韓) 사람으로 살았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민족과 국가의 정신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나라를 지킨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헌법에 양심의 자유가 명시된 대한민국에서 개인적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닐 수는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 윤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공직자 임명 때 안 쓰면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가?
올바른 역사관은 한국인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인과 더불어 당당하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정신적 자산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국익을 지키며, 한일(韓日)간의 새로운 미래를 연다. 먹고살기 힘들어도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진실과 정의를 향한 그 무엇이며(마르크 블로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단재 신채호)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의 뿌리이며 우리 자신이다. 역사는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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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