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불거진 ‘건국절’ 논란

2024-09-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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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광복 79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정부와 여당, 그리고 광복회와 야당은 각각 별개의 기념행사를 열었다. 광복절에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 단체 기념식이 따로 열린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여야 간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역사논쟁까지 불이 붙으며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진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 성향의 김형석 고신대 석좌교수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것이 충돌의 발단이 됐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 및 국난 극복사 관련 자료를 수집·보존·전시하고 연구함으로써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고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이 아닌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친다. 독립기념관의 설립취지와 완전 배치되는 생각을 가진 인사를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논란과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김 관장은 자신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많은 강연들을 통해 “1945년 8월15일은 광복절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가 도움이 됐다” “일제시대에 우리 국민은 일본 신민”이라는 등의 발언을 해왔다. 뉴라이트의 핵심주장인 ‘1948년 건국절’ 주장도 물론 빼먹지 않았다.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이들의 입에서 뜬금없이 ‘건국절’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아예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했다. 일부 보수언론까지 이런 주장에 합세하면서 보수정권 10년 동안 분열적인 이슈가 돼 버렸다.

이후 한동안 잠잠해지는 것 같던 ‘건국절’ 이슈가 친일 논란에 휩싸인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또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1948년 건국절은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올 광복절 경축식 행사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와 미주지역의 한 공관장이 공개적으로 ‘건국절’ 옹호발언을 하는 등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는 왜 이런 주장을 들고 나오는 것일까. 많은 역사학자들은 여기에는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친일세력의 ‘역사세탁’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전의 역사를 부정해야만 친일 선조들의 죄과를 감추고 건국의 공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1948년 건국의 아버지’로 숭모하는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48년 정부수립일 행사에서 “대한민국 30년 8월15일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뿌리에 어디에 있는지를 논란이나 논쟁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억지와 허구 주장으로 ‘건국절’ 논란을 야기하려 한다면 그것은 ‘헌법 부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인식을 가진 인사들을 국민 혈세로 많은 봉급을 받는 독립기념관장, 장관 등 정부 요직에 계속 중용하고 있는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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