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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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자마자 ‘탕’⋯ 이씨 쓰러지자 “칼은 어딨지?”

2024-08-19 (월) 서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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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아 이씨 경찰 총격 사망사건 바디캠 공개

▶ 주검찰, 영상 5개·전화녹취 2개 공개

문 열자마자 ‘탕’⋯ 이씨 쓰러지자 “칼은 어딨지?”

경찰 2명이 빅토리아 이씨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해 현관문을 부수고 있는 모습(사진 왼쪽)과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빅토리아 이씨를 경찰들이 현관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 현관문 안쪽에 이씨 어머니 뒷모습이 보인다. [포트리 경찰 보디캠 캡쳐]

▶ 정신불안 여성 진정 시키려는 노력 없이 문 부수고 총 발사까지 불과 33초 이씨 칼 들고있는 모습은 불분명

뉴저지 포트리의 한 아파트에서 조울증을 겪던 25세 한인여성 빅토리아 이씨가 병원에 가기 위해 911에 신고했다가 출동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당시 상황이 담긴 바디캠 영상이 전격 공개됐다. 사건이 발생한지 19일 만이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서 경찰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이씨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강제로 현관문을 부숴 열자마자 생수통을 들고 있던 이씨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한 비난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16일 뉴저지주검찰은 지난달 28일 포트리 피나클 아파트에서 이씨 사망을 초래한 경찰 총격 과정이 담긴 바디캠 영상 5개와 911신고전화 음성녹취 2개를 공개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유족 등에게 먼저 바디캠 영상들을 보여준 뒤 오후에 일반에게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출동한 경찰들은 아파트 현관문 밖에서 누가 무기(lethal)를 사용할 지 등 각자 역할을 수초 동안 상의한 뒤 바로 문을 부수기 시작한다. 맨 앞의 경찰은 5번 가량 현관문을 몸으로 밀쳐 강제로 열었다.

그순간 이씨가 오른 손에 5갤런 크기의 대형 생수통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이와 동시에 경찰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소리치며 총알 1발을 쐈다. 이씨의 왼편에는 딸의 왼손을 꼭 쥔 어머니가 서 있었지만 경찰은 주저없이 총격을 가했다.

경찰이 강제 진입을 결정한 뒤 역할분담을 상의하고 총격을 가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33초에 불과했다.
영상에서 이씨는 경찰에게 한발 다가섰지만 오른손에 큰 생수통을 들고 있는 것이 분명히 확인된다. 반대편 왼손의 상황은 어머니가 손을 쥐고 있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바디캠 영상으로는 경찰 총격 직전 이씨가 칼을 쥐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게 영상을 확인한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씨가 총을 맞고 쓰러지자 경찰이 “칼은 어디 있지?”라고 두 세번 외치며 이씨에게 다가가 몸을 살폈고, 이어 경찰 중 누군가에 의해 칼이 아파트 복도 쪽으로 던져지는 장면이 보인다. 이후 경찰이 피를 흘리고 있는 이씨를 아파트 복도로 끌고 나와 응급조치를 취하며 수건 등을 요구하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난다.

이와 관련 주검찰은 사건발생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총격 직전 상황은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칼이 발견됐다고만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총격을 가한 경찰관은 포트리 경찰 소속 토니 피켄스 주니어라고 밝혔다.


공개된 바디캠 영상에서 이씨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상황은 보여지지 않았음에도 현관문을 강제로 열자마자 경찰이 곧바로 총격을 가한 것이 드러나면서 과잉 대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찰 대응이 지나치게 성급히 이뤄지면서 비극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크다. 조울증을 앓고 있던 이씨가 흥분 상태임을 알면서도 진정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수십 초 만에 강제로 문을 부수고 발포하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다는 점이 비판을 받고 있다.

이씨 오빠가 911 신고 과정에서 “이씨가 칼을 들고 있다”고 말을 전해 듣고 경찰들이 출동했지만 바디캠 영상에는 경찰이 아파트 현장에 도착해서 총격 직전까지 이씨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최초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잠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안에 있던 이씨와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도 이씨는 어머니 뒤에 서서 왼손으로 경찰을 손가락질하며 “물러서라”고 소리치는 모습만 보일 뿐 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아파트 안에 있던 이씨로 추정되는 여성이 “들어오면 칼로 목을 찌르겠다. 쏘고 싶으면 쏴봐”고 소리쳤고, 이에 한 경찰이 “쏘고 싶지않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를 진정시키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 문을 부수기 시작했고 불과 수십초 후 이씨를 사살했다.

이를 종합하면 경찰의 현장대처가 지나치게 성급하게 이뤄졌고, 이씨가 무기를 소지했는지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총격을 가했다는 이씨 어머니의 증언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법집행 전문가 상당수는 바디캠 영상에서 보여진 경찰 대응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이 이씨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거의 없이 너무 성급히 살상 무기를 사용했다는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뉴저지주검찰의 경찰 무력사용 지침에 따르면 “경찰관은 상황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구두 경고를 하거나 비살상 방식의 진압을 시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한 법집행 전문가는 아파트 안에 여성 2명이 있고 현관문이 닫혀 있다면 일종의 바리케이트가 있는 상황으로 간주해 경찰특공대(SWAT)에 지원 요청을 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특공대가 속한 협상가가 이씨를 진정시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건강 전문가 역시 경찰 대응이 너무 성급했다는 꼬집고 있다.
한 정신건강 상담가는 “조울증이 있는 사람이 칼을 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한 것은 흥분을 최대한 가라 앉히는 것이다. 그것이 위험을 가장 줄이는 길”이라며 “경찰이 소리를 치고 문을 부수는 등의 행동이 이씨를 더 자극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 3면

<서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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