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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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알게 돼

2024-08-08 (목)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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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일들이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일들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때로 후회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삶의 태도가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느 가수가 노래한 “살다 보면 알게 돼…일러주지 않아도..”라는 가사가 더 마음에 와닿는가 보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산에 살던 시절 우리 동네 테니스장에 정년퇴직하신 선생님 한 분이 운동하러 나오기 시작하셨다. 그 분은 겉모습만으로는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해 보였고, 테니스를 치는 솜씨도 여느 젊은이 못지않았다. 교장 선생님 출신답게 말씀도 편안하게 잘하시고, 인상도 좋으신 데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하셔서 젊은이들과 쉽게 어울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분은 승부욕이 아주 강해서 젊은이들과의 게임에서 지면 몹시 실망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이셨다. 어느 때는 실망 정도를 넘어서 몹시 아쉬워하며 약간은 농담조로 “잠이 안 온다”고 말씀을 하셔서, 젊은이들끼리 모여 앉아 수근거리곤 했다. “노인네가 동네 게임에서 졌다고 잠이 안 온다는 정도면 좀 지나친 게 아니냐?”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그 분은 여전히 젊은이들과의 게임을 계속하셨다.

승부와 관계없이 운동 삼아 공을 친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게임에서 지고 나면 즐거운 기분일 수가 없다. 상대 팀이 노인이 되었건 젊은이가 되었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어서, 그분 팀과 게임을 할 때는 “노인에게는 질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뛰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 분께 실망을 안겨드리곤 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 그분보다는 젊었던 내가 정년퇴직하고, 나보다 젊은 동호인과 테니스를 치며 살아가는 지금에서야, 지난날 게임에서 지고 나면 “잠이 안 온다”시던 그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동네 회원들 간에 친선을 도모하고 건강을 다지려고 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역시 상대 팀과 승부를 겨루는 경기에서 지고 나면 기분이 개운치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럴때면 다들 나를 위로하듯이 “이번엔 너무 봐주셔서 그런 거지요…”라는 한 마디는 위로가 아니라 나를 더 씁쓸하게 만들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것들이 소중해 지고, 작은 승부에서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분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때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인생은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여정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테니스 대회에서 그분과 만나 게임을 하게 되었을 때,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겼다고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세월 탓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노인을 배려해 드렸다는 흐뭇한 경험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 내가 철이 덜 들어서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게임에 이겼다는 사실 하나에만 취해서 노인 한 분을 섭섭하게 만들어 드렸다는 자책감이 든다.

시간이 흐르며 배운 것은 결국, 사람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후회도 하고, 다시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큰 이해와 배려를 배우게 되며,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인생은 이렇게 우리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더 많이 배우게 되는 끝없는 여정이다. 젊은 시절의 경험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듯, 지금의 경험들도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배움 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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