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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명문가 손녀가 실종됐다… 사건 맡은 탐정의 실체가 수상하다

2024-05-31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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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TV플러스 드라마 ‘슈거’

할리웃 명문가 손녀가 실종됐다… 사건 맡은 탐정의 실체가 수상하다

사건 해결을 위해 도시를 헤매는 슈거는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애플TV 플러스 제공]

슈거(콜린 패럴)는 탐정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워낙 실력이 출중해 해외에서 사건 의뢰를 받기도 한다. 고급 정장을 늘 차려 입고 고풍스러운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 오래된 흑백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형이다. 아니나 다를까. 슈거는 영화광이다. 그런 그에게 할리우드 거물 조너선 시겔(제임스 크롬웰)이 사건을 맡긴다. 2주 동안 종적을 알 수 없는 손녀 올리비아(시드니 챈들러)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시겔 집안은 영화 명문가다. 조너선의 아들 버니(데니스 부트시카리스)가 대를 이어 영화 제작을 하고 있다. 손자 데이비드(네이트 코드리)는 어려서부터 배우로 활동 중이다. 올리비아도 온라인에서는 유명 인사다.

조너선은 손녀의 행방이 걱정인데, 이상하게도 버니는 사라진 딸에 별 관심이 없다. 데이비드는 배다른 오빠라 해도 여동생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슈거는 올리비아 행적을 쫓다가 버니와 데이비드가 올리비아의 실종과 관련 있다고 판단한다.


영화 팬이라면 명문가의 사건 의뢰를 받은 탐정이 수사를 진행하다가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는 이야기 전개가 익숙할 만하다. 고독한 탐정 슈거가 LA를 떠돌며 사건 해결을 위해 탐문하는 모습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슈거의 담담한 독백은 미국 유명 배우 험프리 보가트(1899~1957)를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1940~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필름 누아르 영화의 전통을 이어 받는다. 옛 필름 누아르 영화 장면들이 곧잘 끼어들기도 한다.

화면을 장식하는 스타일은 예스러우나 내용은 21세기에 맞춰져 있다. 시겔 집안은 성폭력 추문에 얽혀있다. 2017년 ‘미투’의 변곡점을 이뤘던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미투라는 소재로만 고전영화와 차별화하는 것은 아니다. 슈거는 별난 존재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의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슈거는 여러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명문 대학에서 수석을 한 이력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남다른 운동 신경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가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슈거의 탐정 활동을 관리해주는 여성 루비(커니)도 미스터리하다. 루비의 집에서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정기모임을 갖는다.

슈거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은 반전이다.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내용이나 황당하거나 허탈할 수 있다. 도시를 부유하는 외로운 탐정을 묘사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브라질 유명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1~2회, 5~6회, 8회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시티 오브 갓’(2002)과 ‘두 교황’(2019) 등으로 유명한 그는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동조자’의 일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시티 오브 갓’에서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과 빠른 편집의 묘미를 선보였던 메이렐레스는 오랜만에 자기만의 영상 스타일을 과시한다. 빼어난 영상과 함께 눈길을 끄는 건 패럴의 연기다. 패럴은 익숙한 내용과 낯익은 스타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표정한 듯 어두운 얼굴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슈거의 모습은 중독성이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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