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항아리 작가 최영욱 ‘카르마: 의식’
▶ 11일 헬렌 제이 갤러리서 개인전
▶수많은 인연의 지속·단절성 표현
달항아리 작가 최영욱
최영욱 작품 ‘카르마(KARMA)’ 시리즈
헬렌 제이(HELEN J) 갤러리가 오는 11일 최영욱 작가와 함께한 두 번째 전시 ‘카르마: 의식’(KARMA: rites)을 개막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적 인물인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 시리즈 신작이 공개되는 화제의 전시다.
빌게이츠가 구입한 달항아리 작가로 너무도 유명한 최영욱의 작품은 보는 이의 점진적 집중을 이끌어낸다. 먼저 달 항아리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고, 이어서 여러 색의 얼룩과 헤어라인 같은 빙열(도자기 표면의 균열)이 포착된다. 그에게 있어 세라믹 위를 뒤덮은 흔적들은 기술적 공백이나 사진적 표현이 아닌, 과거 경험의 산물이자 카르마 축적의 지표와 같다. 최영욱의 특징적 모티프인 달 항아리는 다채로운 색조, 비뚤어진 걸음걸이, 꾸밈 없는 외관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람과도 같은 이런 특성을 염두에 두고 최영욱은 마치 일기를 쓰듯 작업을 수행하며 내면의 관찰에 집중한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영욱이 구축해온 구름이 낀 듯한 배경과 눈높이에 위치한 달항아리라는 형식은 일상과 의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새로운 작업 방식이 파생되고 칠흑같이 어두운 ‘카르마(Karma) 3-60’에서는 유약이 갈라진 틈을 반전되게 표현하여 달 항아리를 가느다란 흰색 선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달 항아리의 표면이 마치 산악 풍경으로 보일 만큼 근접 거리에서 들여다본 시각도 담고 있다. 화석화된 해저 퇴적층에서 미생물을 포착해, 세계 고고학적 발견을 가능케 한 역사적 기록의 매개체인 진흙. 최영욱 작가는 달 항아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전경에 내세움으로써 화가적 지혜와 성찰적인 성향을 표출한다. 그가 표현하는 얼룩진 표면은 과거는 드러나 있으나, 내면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다.
최영욱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40여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수의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빌게이츠재단, 필라델피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등에 소장돼 있고, 대중적으로는 2011년 빌게이츠재단이 건물 준공과 함께 작가의 ‘카르마 KARMA’ 시리즈 3점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작품제목인 ‘카르마’(KARMA)는 불교용어 ‘업’을 의미한다. 인과의 연쇄관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수많은 균열을 담은 달항아리 형상의 ‘카르마 KARMA’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삶의 수많은 인연의 지속·단절성을 표현하고 있다.
미대 졸업 후 생업을 위해 10여년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한 작가는 작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과감히 학원운영을 접고 뉴욕으로 건너와 작품활동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우연히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한국관에 전시된 달항아리를 보게 된다. 한 해 방문객이 300만명을 넘는 미국의 가장 큰 미술관이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전시관에 덩그러니 놓인 달항아리 한 점의 발견은 작가로서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영감이 된다. “우유 빛깔에 크랙과 얼룩이 많은 달항아리가 혼자서 외로운 듯 했다. 먼 이국땅에 있는 내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달항아리가 나를 그려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는 최 작가의 작가노트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달항아리 표면의 빙열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다. 수많은 선들이 이어지고 갈라지며 또 이어지고 갈라진 형상은 도자기를 구우면 생기는 표면의 작은 선을 표현한 것으로, 작가에 의하면 이는 “우리의 인생길”이다. 가늘고 작은 선을 직접 그려,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형상이 마치,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우리의 삶처럼 느껴져 작가는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영욱 개인전 오프닝 리셉션은 오는 11일 오후 5~7시 할리웃에 위치한 헬렌 제이 갤러리(929 Cole Ave., LA)에서 열린다. 전시는 오는 7월22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info@helenj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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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