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반전시위의 추억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젊은이들의 반전시위로 미국사회가 혼돈에 빠졌던 196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한다. 여러분은 ‘꽃을 든 여인’이라는 제목의 베트남 반전평화시위 사진을 기억하는가. 당시 워싱턴 거리에서 한 여성이 총을 든 군인들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이 사진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미 대학 캠퍼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만 해도 미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대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으며, 다수의 미 대학 교내에 야영지를 형성하며 시위를 이어나가는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은 연일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뉴욕시에서도 여러 대학생들이 가자지구에서의 휴전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멈추라고 외쳤다.
미 전역의 대학가에서 가자지구 휴전 및 이스라엘과 거리두기를 촉구하는 시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곧 여름방학에 돌입할 텐데, 그 이후에도 본격적으로 시위가 불붙을까 걱정이다.
‘베트남전쟁’은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과 미국 사이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말한다. 원래 반정부 세력과 정부 사이의 내전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미국의 개입이 너무 길어짐에 따라 미국의 젊은이들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사망하는 미군청년들이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1967년 4월 바로 이곳 뉴욕에서 40여만명이 반전시위를 벌였다. 유럽은 물론, 전쟁 당사국인 미국에서는 특히 격렬한 반전시위가 뜨거웠다. 그해 시위의 1년 전보다 시위자들의 수는 몇 배가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러다 역사적인 1968년 ‘구정 대공세’로 미 여론이 급반전했다.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이 깜짝 대공세를 벌여 사이공의 미 대사관이 베트콩에 의해 뚫렸고 북부의 유서깊은 도시마저 북베트남군에 장악됐다.
지금 대학가의 시위 양상이 그 당시와 너무나 유사하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도 1968년 4월에 학생들이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다 경찰에 수백명이 체포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이라는 학생조직이 중심이 되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그해 11월에도 미 대선이 있었다. 미군 파병을 결정한 민주당 소속 린든 존슨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결국 존슨은 차기 대통령선거 출마를 포기, 그러다 보니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이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리더십을 잃은 바이든이 낙선의 고배를 마실까.
한편 미 대학가를 휩쓰는 친팔레스타인 시위의 초점이 된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학교의 총장이 기로에 빠졌다고 한다. 타 아이비리그 총장들도 얼마전 친이스라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자지구에는 팔레스타인인 150만명이 매일 떨면서 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금 가자지구에 미사일과 대포, 드론 등을 동원해 지상작전 확대일로에 있다. 이 여파로 가자지구에 최소한의 인류애적인 지원도 힘든 상황이다.
역사는 항상 소수의 엘리트 학생들 편이었다. 컬럼비아대 교정 잔디밭에 가자전쟁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텐트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게 철없는 장난일까.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벌어지고 있는데 최소한 비야냥거리지는 말자.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수만명에 육박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으로 고통받는 다수의 미국인들이 가자상황에 신경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나마 엘리트 대학생들이 나서주고 있어 다행이다. 누가 그랬던가. 연탄재 발로 차고 다니지 말라고. 열정을 연탄처럼 다 불태워보고 살아본 적이라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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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