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위 굴려 올리기

2024-04-19 (금)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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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이후부터 인간의 신체기능이 쇠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근육양도 해마다 1-2% 감소한다. 신체 노화로 근육세포의 수가 줄고 충분하지 않은 식사와 운동 부족이 겹치면 근육은 급속히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로 운동신경이 둔화되어 보행 장애나 낙상 위험이 높아지며 골절의 위험도 커진다. 근육이 줄어드는 만큼 포도당 사용량도 줄어들어 당뇨병과 동맥경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운동이 골격근, 심장근육, 내장 근육에 다 도움이 되지만 걷기만 해서는 상체나 허리의 골격근 운동에 부족하다.

필자도 운동부족을 느껴 피트니스 센터에 부지런히 들러 무리하지 않게 운동 하고 있다. 젊은 사람이 많지만 중년, 노년의 남녀노소들, 또 전동차를 타고 도우미와 같이 운동하러 오는 분도 있다. 땀을 흘리며 뿜어내는 에너지는 살아있다. 센터의 2층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면 역기를 들거나, 각종 기구 앞에서 쉴 새 없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몸 짱의 남녀들이 보인다. 인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무슨 잘못들을 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무거움을 들어 올리고 당기고 있는 걸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코린토스의 왕인데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 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머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비밀을 누설하게 된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하고 신들에게 도전하는 죄로 우여곡절 끝에 시지프스는 형벌을 받게 된다. 시지프스는 지하세계의 어떤 높은 산기슭에서 커다란 둥근 바위를 그 산 정상까지 굴려 올려 놓아야 한다. 시지프스가 어렵게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자마자 바위는 다시 산 밑으로 저절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터벅터벅 산 밑으로 내려와 다시 바위를 정상으로 굴려 올려야 한다. 그의 형벌은 절대 끝이 나지 않은 채 영원히 계속된다. 소설가 카뮈는 현대의 부조리, 현대인의 삶을 시지프스의 신화로 비유하였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은 자칫 거대한 자본주의의 부속품처럼 느껴질 수 있다. 죽음을 통해 부조리에서 도피하는 방법도 있지만 죽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성실한 매일의 삶이 부조리(부당한 형벌)를 이기는 것이라 했다. 그리스 신들이 인간에게 주려고 했던 절망을 거부하며 시지프스는 다시 굴러 떨어진 바위를 밀기위해 산을 내려가면서 잠시의 휴식을 맛본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우리가 들어 올린 역기나 운동기구들은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기에 또 들어 올려야 하지만 그 힘든 과정 속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근육과 몸은 만들어져간다. 어려운 고통에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열매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균형 있는 의료 혜택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조리를 겪고 있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 특히 아프리카는 더욱 심하다. 필자도 마음을 같이 하는 분들과 미력이나마 아프리카의 의료 기관을 돕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자선 병원들이 심각한 운영난으로 문을 닫고 있다. 돈을 낼 수 있는 환자들이 별로 없기에 누군가의 희생과 땀이 없이는 자선 병원들이 운영될 수 없다. 물질적 도움과 직접 몸으로 도와야 되는 자선병원의 운영은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부담되는 일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힘을 내어 돕는다면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과 희망이 될 것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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