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에서 농사짓는 시대가 다가온다

2024-04-17 (수) 조재호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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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우주산업 시장이 2020년 약 480조 원에서 2040년 약 1,37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우주산업은 20년간 연평균 3.1%씩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 우주산업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 국내 우주산업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우주산업 시장은 약 3조 9,000억 원으로 세계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2년 10월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계획’에서 미래 도전 분야에 우주·항공·해양을 포함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제4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32년 우리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키고 2045년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우주 강국을 향한 위대한 여정에 나선 것이다. 미래에는 우주개발을 선도하는 우주 강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주개발을 논할 때 반드시 부상하는 우주 농업 연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우주 농업은 우주선·우주정거장·우주기지 등의 우주 공간에서 식량을 생산해 인간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말한다. 우주인이 지구 밖에 장기간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려면 한 명당 하루 1.8㎏의 식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주로의 식량 이송은 무게와 부피의 제한으로 쉽지 않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마션’에서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기까지 약 1년 반이 넘는 기간 감자를 재배해서 생존한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우주 농업은 상상력으로 지어낸 결과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주 농업 연구는 1940년대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으로 촉발됐다. 1982년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에서 애기장대를 재배해 꽃을 피우고 수확한 것이 우주에서 최초로 성공한 식물 재배 사례다. 1996년에는 러시아 우주정거장인 ‘미르호’에서 밀 재배에 성공했고 2014년에는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이 적상추, 2021년에는 고추 재배에 성공했다. 물론 아직은 소규모 실험 재배에 그치지만 10년 후쯤에는 달 기지 내 온실에서 생산한 작물로 우주인의 식량 자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우주 농업 등 극한 환경에서의 식량 생산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농촌진흥청은 2010년 극지연구소와 협력해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실내 농장(컨테이너 형태)을 보냈다. 이 실내 농장 덕분에 월동 대원들의 밥상에 신선한 잎채소가 올랐다. 2020년에는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한층 진화된 실내 농장이 남극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미 수십 년 이상의 우주 농업 연구개발(R&D) 경험을 가진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출발한 우리나라가 현시점에서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주시대에 우주 농업 선도국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기술 경쟁력을 갖추려면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한 선진 기술 도입과 경험 축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산·학·연·관 공동으로 기술·산업·학문 간 협업과 융복합 연구를 활발히 추진해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우주 농업 연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극지나 사막 등 극한 환경에서 식량 생산 기술의 획기적인 도약과 수직 농장, 스마트 농업 등 국내 농산업 기술의 혁신적 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12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우주인의 날’이다. 반세기 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밟던 감동적인 순간을 우리는 아직도 추억한다.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우주개발, 우주 농업에 대한 투자가 먼 기억 속의 한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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