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가 정치 정상화’를 위한 기구 필요

2024-02-13 (화)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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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류가 점점 더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거의 노골적으로 전쟁하자고 협박하며 새해 한 달 동안에 벌써 10여 차례나 각종 미사일 발사 시험을 과시했다. 국내외 관측통들은 공통으로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상시 분쟁지역‘이라고 분석한다. 더하여 실제 전쟁이 발발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는 대개가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설명한다.

남북 상황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는데도 한층 걱정스러운 것은 여야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다. 각 정당 정치인 그 누구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김정은의 ‘국가 분단’ 주장에도 이를 묵인하자는 것인지, 그냥 버릇처럼 지껄여보는 말로 치부해버리자는 것인지, 공포에 질려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라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태도들뿐이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정치꾼들은 차고 넘치는데 정치가 없다”라는 개탄의 소리가 따갑게 들려오고 있다. 남북 충돌 위기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오르 명품 백’ 수수 사건이 총선 분위기에 몇 달째 주조를 이루고 있다. 김 여사 명품 백 사건은 최재영 목사라는 자가 몰래 카메라를 장착하고 고의로 김 여사에게 접근, 뇌물을 제공하고 이 장면을 녹취한 후 야당 측에 제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김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명품 백 뇌물을 받았으니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과 이외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천박한 행위였다. 그러나 최재영 목사라는 자가 김 여사의 견물생심 허영 본능을 고의로 유혹하여 뇌물수수 사건을 일으켰으니 최 목사라는 자의 수법이 비열하고 야비한 조작 범죄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 목사는 여러 차례 북한을 드나들었고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돌고 있다고 한 방송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다.

총선거 날짜가 불과 6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족의 운명을 가늠하는 토론이 없으니 이 무슨 선거풍토인가. 경제문제, 주택, 교육, 인구감소 문제 등 정작 주요 안건에 대한 토론 없이 한가하게 대통령 부인 뇌물조작 사건만 물고 늘어지며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우리 정치판이야 말로 ‘이솝우화’에도 부끄러워 올리지 못할 민낯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치는 언제부터인가 ‘보국안민(輔國安民)’ 정신이 사라지고 상대 공격을 우선시 하고 그것을 공로나 성과로 자랑하는 괴상한 질병에 걸려있다. 지금 같은 정치 풍토에선 총선 결과에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허망한 상상일 수밖에 없다.

야당 민주당이 이기는 경우 당장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드라이브를 시작할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들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시작은 고사하고 당선 직후부터 퇴진 탄핵을 주장해왔다. 이재명 대표는 “멋지게 지면 무얼 하나“ 라고 계속 외치고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것이다. 그는 심판대에 올라 유죄판결을 받고 쇠고랑을 차지 않으려면 선거를 이겨야만 한다는 절박감에 사무쳐있는 것 같다.

여당 국민의 힘이 선거에서 이길 경우 또한 정치 회오리 시나리오가 예측된다.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은 법무장관 재임동안 이재명을 제압하지 못한 콤플렉스 때문에 선거에 임하는 그의 목표는 ‘이재명 유죄판결 구속수감’일 것이다. 그런 파장이 현실화될 경우 야권 관계자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수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불복하는 좌파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가열되면서 정당 간 격렬한 혈투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는 부조리, 모순으로 가득 찬 아수라장에 정국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할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본다. 상한선, 하한선을 멋대로 넘나드는 여야의 정치 싸움을 중재하고 만류할 수 있는 도덕적 정상화 기구가 절실하다.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원로 인사들로 구성하는 ‘국가 정치 정상화’를 위한 기구를 검토해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혼란에 빠졌을 때 쓴 소리 할 수 있는 ‘어른 그룹(인물 성역)’이 없어 한스럽다. 국민 모두가 현실을 직시하고 긴장할 시간이다.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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