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사랑의 전력투구

2024-04-09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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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대에 잘레우스라는 왕이 있었다. 범죄에 대하여 최고의 강력한 처벌을 하는 왕으로 유명한데 특히 강간죄는 눈알 두 개를 빼는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왕자의 강간이 드러난 것이다. 법대로 하자면 왕자의 두 눈알을 빼어야 한다.

그렇다고 용서하자면 국법의 정의가 무너진다. 왕은 왕자의 눈 하나를 빼고 자기의 눈 하나를 빼어 국민들에게 고시하였다. ‘이것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법의 공의가 모두 지켜졌노라’ 이 이야기가 가르치는 교훈은 나라가 잘 되기위해서는 사랑과 공의가 모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엘레나 루즈벨트(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는 어려서부터 무척 고생스럽게 자라났다. 열살 때 고아가 되고 스무살 때 결혼해서 여섯 남매를 두었는데 한 아이가 어려서 사망하였다. 엘레나는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나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다섯 아이가 있습니다”하고 담담하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남편의 다리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걷지를 못하게 되었다. 쇠붙이로 받침대를 하고 휠체어에 실려 다니는 대통령이 되었다. 남편이 농담삼아 “아직도 나를 사랑하오?”하고 물었을 때 엘레나는 웃으며 “나는 당신의 다리를 사랑하여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대단한 영부인이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약점과 부족함도 포함한 전적인 사랑이 정말 사랑이다. 성 프랜시스는 참새까지 사랑하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동물까지도 사랑한 것이다.

막강한 대영제국의 압제자들도 아무런 힘도 없는 간디의 저항운동을 제지하지 못하였다. 간디가 영국의 억압통치를 반대하였으나 결코 그가 영국인이란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 폭 넓은 박애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욕심부리지 않는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는다. 사랑은 복수심을 갖지 않는다. 사랑은 미움까지도 극복한다. 사랑은 도도히 흐르는 큰 강과 같다.
야구에 전력투구란 말이 있다. 투수가 자기의 훈련과 경험과 상대타자에 대한 지식과 당일의 컨디션 들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최선을 다해 던지는 공이다.

나의 삶도 전력투구여야 한다. 그리고도 부족한 것은 나의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예수는 운명하며 마지막 말로서 “다 이루었다”고 외쳤는데 그 말이 바로 내가 최선을 다하였다는 만족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마지막에 내가 최선을 다하였다는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이다.

세계명작 중에 ‘쿠오바디스’란 작품이 있다. 쿠오바디스는 라틴어로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이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시절이 있었다. 무대는 예수살렘을 빠져나가는 길이다.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 후 황급하게 예루살렘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 앞에 예수가 나타난다. 베드로가 놀라서 묻는다. “쿠오바디스 도미니(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그때 예수가 대답한다. 너까지 박해가 무서워 도망치고 있으니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베드로는 자기의 나약한 믿음을 뉘우치고 발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예수처럼 바른자세로 십자가에 달릴수 없으니 거꾸로 달아 달라고 청원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전설을 소설화 한 내용이다. 베드로의 최후의 전력투구를 소설화 한 작품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최선이 아니라 내 능력의 70%정도만 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짧은 인생인 데 기왕이면 100%의 내용을 꾸민다면 그것이 소위 성공적인 인생일 것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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