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역사는 흐른다
2024-04-01 (월)
그 해 가을은 내게 가장 아름답고 동시에 가장 잔인한 계절이었다. 팬데믹의 제약을 뚫고 작은 아들이 결혼을 했다. 선교사 자녀로 자라면서 늘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지냈던 아픈 손가락 같은 아들이다. 며느리도 가슴 쓰린 사연이 있는 아이라 두사람의 연합이 나에겐 더 특별하고 애틋했다. 모든 축하와 축복을 아낌없이 부어주고 싶은데… 그 결혼식을 앞두고 나의 뇌종양 소식을 전해야 했다. 가족 모두 마음껏 축하할 수도, 그렇다고 슬픔이나 우려를 내색할 수도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출렁였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 스치듯 지나가고… 뇌종양과의 한바탕 대결을 위해 병원으로 입성했다. 첫번째 개두술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두번째 감마 나이프 수술은 집도의의 의뢰를 통해 서울 대학교 병원에서 했다. 팬데믹 시기여서 갑작스럽게 수술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고비마다 기적처럼 길이 열렸고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입원 기간 중에 ‘동산병원 100주년 기념 사진전’ 특별 행사가 열렸다. 동산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은 선교사가 세운 대구 최초 근대 의료기관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명맥이 이어진 한국 최초 서양식 국립병원의 이름도 ‘제중원’이다. ‘백성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백성이 빈곤층이었고 열악한 의료수준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제중원들의 설립은 의미 있는 행보였다. 선교사가 세웠든 나라에서 세우고 선교사들이 그 지붕 아래에서 일을 했든,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의료 강국이 되기까지 서양 선교사들의 헌신과 역할은 실로 놀라웠다.
동산 병원과 서울대 병원에 전시된 과거의 흔적들은 해당 병원뿐 아니라 한국의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진들을 따라가며 초기부터 현재까지 두 병원의 발전과 업적을 살펴보는데, 가난과 질병으로 뒤범벅되어 외부 원조를 의지하던 한국이 어느 순간부터 의료 선교사를 파송하고 의료 봉사를 다니며 열방을 돕고 있었다. 나의 심장이 터질 듯 울렁거렸다. 역사의 흐름속에 이토록 놀랍게 바뀐 고국의 모습이라니…
나의 인생 전반전에 공들여 섬겼던 우간다가 떠올랐다. 먼 훗날 역사를 더듬을 때, 몰라보게 성장한 그곳의 모습에 우리의 눈물과 땀과 수고의 흔적도 묻어 있기를… 그리고 멀지 않은 시간에 우간다도 받은 것을 나누어 주는 방향전환이 일어나 열방을 세울 수 있기를… 두 병원의 역사가 보듬은 이름모를 많은 이들의 발자취 속에 나의 인생 여정을 겹쳐 보면서 그 해 가을 잔인한 시간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