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Smile at your Fear!

2024-03-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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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정/주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크고 작게 느껴질 뿐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봐요.
저는 평소에 아들이 저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들을 낳고 키우며 제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두려움 얘기하다 왜 갑자기 아들 얘기냐고요? 아들의 탄생은 제 안에 숨어있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했어요. 그 중 두려움에 휩싸인 저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본 것 같아요. 저에게 육아는 아들이 조금만 아파도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나와 안절부절못한 나날들의 연속이었거든요. 아기는 태어나 각종 면역을 쌓아가느라 아프며 크는 게 정상인데 아들의 작은 불편함도 저에겐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한 생명체가 온전히 저에게 매달려 있다는 부담감이 두려움의 가장 큰 요소였던 것 같기도 해요.
“Private Boundary를 오랫동안 침범 받으면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있게 되어 종종‘무의식의 발현’을 경험한다.”라고 말한 어느 유명 심리학자의 말이 저는 꼭 맞다고 봐요. 그 침범자는 어린 아기가 유일 하고요. 아기가 24시간 내내 엄마의 Private Boundary를 넘어오다 보니 엄마는 스트레스 상태에 있게 되고 건강한 사고력은 급격하게 떨어 지게 되지요. 그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함께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처럼 많은 엄마들이 아기를 낳은 뒤 무의식의 발현으로 고생했다고 하나 봐요.
아들이 태어나기 전의 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고 진취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으례히 어떤 일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담담히 해결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정하며 살아온 거지요. 그때는 저의 두려움이 거대한 무의식주머니 속, 깊이 숨어 있었던 모양이예요. 무의식의 발현으로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치거나 아님 깨치거나 둘 중 하나 일듯 해요.
아들을 낳고 선명하게 드러난 두려움과 그 이면에 상존하는 분노와 슬픔이 저의 일상을 휘감던 어느 날밤,‘이 엄청난 에너지들이 아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면 어떡하지?’라는 한 생각이 저의 머리속에 대뜸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에게 한 질문에 아주 심각해졌던 거지요. 이윽고 그 한 생각은 저의 의식을 확장 시켜 허상인 두려움을 희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실상인 아들의 찬란한 존재를 더욱 선명히 드러나게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미치는 쪽이 아닌 깨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아주 귀한 날이었네요. 그후 저의 육아는 사랑으로 가득 찬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그사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네요. 아직도 가끔씩 저 안에 잠자고 있는 두려움이 깨어나 밖으로 솟구치려 할 때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일일이 미소로 반갑게 답해 주고 있어요. 저의 스승인 아들에게 대물려지지 않게요. 우리모두 미치지 말고 깨치길 바라며, Smile at your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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