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생들의 마약 사용 문제

2024-03-28 (목) 문일룡 변호사ㆍ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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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일이다. 일 때문에 법원에 갔다가 잘 아는 교인을 만났다. 교회에서 신앙심 돈독하기로 알려졌고 선교 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인사차 어떤 이유로 법원에 왔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얼버무리는 듯했다. 내가 관여해야 할 일도 아니고 나도 먼저 처리할 고객의 일로 바빠서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런데 고객의 일을 다 끝낸 후 생각해보니 그 교인을 마주친 곳이 형사 사건 심리 법정들이 위치한 복도였다. 그 곳에 올 일이라면 좀 심각한 일인 것이다. 궁금해서 다시 그 복도로 돌아갔다. 게시판에 당일 형사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사건들이 적혀있는 리스트가 붙어있어 살펴보았다. 알파벳 순 리스트에 그 교인의 이름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교인의 자녀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기소 내용이 적혀있었다.

마약 관련 사건이었다. 나를 보았을 때 그 교인이 왜 그렇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즈음 미국 전체에서 학생들 가운데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게 마약 사용 문제이다. 학생들 사망 원인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마약 사용이라는 통계까지 나와 있다. 그리고 마약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부모의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어느 가정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모가 신앙심 높은 기독교인 가정에서도 있을 수 있고 학교 성적이 뛰어난 우등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는 마약 구입에 필요한 돈 때문에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이나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가장 환각성이 높다는 유사 펜타놀을 아주 싼 값에 그리고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가정의 재정 형편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펜타놀은 단 돈 몇 달러에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치사율도 매우 높다. 스마트 폰에서 스냅챗 등의 앱을 사용해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한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은 이러한 마약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여러 차례 학생들과 부모들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얼마전 한 고등학교에서 가진 커뮤니티 모임에는 작년 초 펜타놀 사용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가 나와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었다. 육사 출신 장교 아버지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여러모로 타의 모범이 되고 부족함 없이 자란다고 생각했던 12학년 아들이 친구의 권유로 마약에 손을 댄지 불과 6주 만에 집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작년에 미국에서는 펜타놀로 하루 평균 311명씩 사망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만석의 보잉 787-10 비행기가 매일 한 대씩 추락해 모든 승객이 사망하는 것과 같은 숫자란다.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해도 신문에 뉴스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는 엄청난 사건인데 그런 사건과 맞먹는 숫자가 매일 사망한다는 것이다.

마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한인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특히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부모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마약들을 접해보거나 그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처럼 미국에서 50년을 살고 고등학교 3년을 미국에서 공부한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이 변호사이고 교육위원 일을 20년 이상 해오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마약을 직접 접해 본 적은 없었다. 하다못해 마리화나 냄새도 제대로 구분 못한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마약 사용 문화에 쉽게 접하는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부모들의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마약에 대해서도 자녀들 이상으로 알아야할 것이다. 이에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문일룡 변호사ㆍ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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