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지하실부터 옥상 테라스까지

2024-03-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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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완공됐다고 끝이 아니라 그만큼 사는 사람들이 그 집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쏟고 가꿔야 진짜 우리 집이 되는 것 같아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지하실부터 옥상 테라스까지

서울 은평구의 단독주택 ‘화영주택’의 외관. 지하 1층~4층 규모의 협소주택으로 건물 외부에 띠를 두른 듯 수평으로 차곡차곡 쌓인 붉은 벽돌이 좁고 높은 집의 수직적 인상을 상쇄한다. [김창묵 건축사진작가 제공]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지하실부터 옥상 테라스까지

1층 응접실. 벽에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당부했던 글귀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비르고 아뜰리에 제공]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지하실부터 옥상 테라스까지

3층과 4층을 잇는 계단은 이동 통로이자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비르고 아뜰리에 제공]


도시 사람들이 단독주택살이를 미루는 이유는 엇비슷하다. 자금이 부족해서, 땅이 마땅치 않아서, 은퇴 후에… 서울 은평구 불광동 단독주택 ‘화영주택(대지면적 56㎡, 연면적 133.33㎡)’에 사는 손인성(36)씨와 아내(36)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관리가 힘든 단독주택 생활은 젊을수록 도전해볼 만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관리비만 내면 되는 공동주택이야말로 나이 들수록 적합한 주거 형태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부부는 망설임 없이 아파트를 벗어났다. 약 17평 대지에 주차장, 이격 거리 등 이것저것 빼고 나니 층당 10평이 채 안 됐지만 용기를 냈다. 워낙 집을 좋아하는 자칭 ‘집사'이자 건축가(비르고 아뜰리에 소장)인 남편이 ‘작고 빨간 집’의 설계를 맡았다.

■포근하고 따뜻한 4층 협소주택


화영주택은 협소주택의 문법에 따라 층별로 공간이 구획된다. 지하 1층은 작업실(서재) 겸 창고, 1층은 응접실, 2층은 침실, 3층은 주방과 거실이 자리한다. 꼭대기 4층은 옥상 테라스와 연결된 약 2평의 자투리 공간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두고 세탁실로 쓴다.

독특하게도 통상 아래층에 공용 공간을, 위층에 사적 공간을 두는 여느 단독주택과 달리 세탁실을 제외하면 사실상 맨 위층인 3층에 주방과 거실을 배치했다. 손 소장은 “부부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전망 좋은 3층에 가족이 모이는 공간을 두고 싶었다"고 했다. 주방이 아래층에 위치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음식 냄새가 집에 덜 퍼진다는 기능적 이점도 있다. 부부가 자주 식사를 함께하는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는 동선을 고려하더라도 3층에 침실보다 주방을 배치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부부는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다. 결혼하고서는 서울 왕십리 뉴타운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았다. 공동주택에서만 살아온 아내에게는 꽤 괜찮은 신혼집이었지만 태어나서 줄곧 단독주택에서, 그것도 한 집에서만 살아온 남편에게 아파트는 낯선 세계였다. “생활하기는 편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죠. 층간소음도 생소했고요.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동이 위축되더라고요."

요리와 꽃을 좋아하고, 식물을 가꾸며 집에서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그는 이 집이 마음 편안한 집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가 부모님과 살던 집과 같은 붉은색 점토 벽돌을 외장재로 택했다. 건물 외부에 띠를 두른 듯 수평으로 차곡차곡 쌓인 벽돌은 좁고 높은 집의 수직적 인상을 상쇄하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인테리어도 붉은빛이 많이 도는 원목으로 창호, 바닥재, 가구 등을 통일해 따뜻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집 이름은 화목할 화(和)에 길 영(永), 화영으로 지었다. “오래도록 화목한 집"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작고하신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회사의 사명이기도 하다. 1층 응접실에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남긴 애정 어린 글들을 액자에 끼워 걸어 두었다. 지어진 지 2년이 갓 넘은 집에서 새 것의 냄새보다 오래된 집의 포근함과 따뜻함이 풍기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하실 만들어 작업실과 창고로

지하실은 서재와 창고로 쓴다. 지상층만으로는 가족에게 필요한 30평대 면적이 나오지 않자 강구한 묘책이었다. 집에서 자주 일하는 남편의 작업실이면서 철 지난 옷이나 자전거 등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물건의 수납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지하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쪽에는 드라이 에어리어(dry area·채광, 환기, 방습을 위해 만든 지하의 외부 공간)를 만들었다.


지하층을 만들게 되면, 지상층으로만 이뤄진 건물을 지을 때보다 공사비가 대략 30%가량 더 소요된다. 대신 지하는 건폐율, 용적률 산정에서 제외된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이 집에서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공간은 약 12평인 지하실이다. 그는 “협소주택을 지을 때는 가용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지 선정 단계에서 북쪽이 도로와 접해 있는, 일조권 사선 제한을 덜 받는 땅을 고르거나 지하층을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남편이 설계하며 가장 공들인 부분은 계단이다. 그는 “공간을 4층으로 켜켜이 쌓은 형태이다 보니 이를 연결해주는 계단의 위치, 형태, 규모가 중요했다"며 “집에서 가장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인 만큼 다른 협소주택처럼 작게 만들어 구석에 몰아넣기보다는 일반주택의 계단과 비슷한 크기로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3층과 4층을 잇는 계단은 회오리 모양의 흰색 원형 계단을 설치했다. 이때 계단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계단은 햇빛, 조명을 받아 흰 벽에 곳곳에 그림자를 만들며 공간에 생동감을 더한다. 또 벽을 최소화해 공간 낭비를 없애고 개방감을 더했다. 2층에 침실과 계단을 분리하는 벽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완전히 막지 않고 계단 쪽을 향해 작은 창을 냈다.

■코로나 우울함 날린 옥상 테라스

집은 2020년 2월 준공됐다. 부부는 코로나19가 휩쓸었던 지난 2년간, 이 집 덕에 “안전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외부 공간인 옥상 테라스의 공이 특히 컸다.

동네의 오래된 건물 틈 사이로 북한산이 빼꼼 보이는 테라스는 용도가 시시때때로 변한다. 이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 한 켠에는 상추, 루꼴라, 바질, 로즈마리를 키운다. 어느 날은 수영장, 어느 날은 불멍을 하는 캠핑장이 된다.

물론 단독주택은 손이 많이 간다. 비가 쏟아지면 테라스의 물이 잘 빠져나가는지 살펴야 하고, 눈이 내리면 얼기 전에 골목을 쓸어야 한다. 한겨울에는 수도, 보일러가 동파되지 않게 챙겨야 한다. 아파트에 계속 살았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하지만 그는 집주인에게 부여되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을 부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단독주택의 매력"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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