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진실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보편적 상식을 더 정교하게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진실한 삶과 이야기를 더 가까이 느끼고 사려 깊게 살핀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다. 러일전쟁,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 등.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고통과 상처의 서사로 가득했다.
21세기에도 9·11테러로 촉발된 이라크전쟁, 그리고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술 현장에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예술로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오래전 전쟁에 나간 아들의 주검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모습, 전쟁의 파국적 고통에 등 돌릴 수 없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 등은 우리에게 측정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와 공감의 힘을 느끼게 했다. 이것이 ‘미술의 힘',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스러운 미술의 힘'이 아닐까?
그리스어 파레르곤(parergon)은 ‘주변' 또는 ‘옆'을 뜻하는 파라(para)와 ‘일' 또는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의 합성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회화 속의 진리(La verite en peinture)'에서 ‘파레르곤' 개념을 통해 서구 미학의 근간을 뒤흔든다. 이 개념은 ‘안과 밖', ‘본질과 부수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철학적 장치이다.
데리다는 그림을 둘러싼 액자는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림의 본질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과 의미의 구조를 구성한다고 본다. 이를 확장하면 미술 작품은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와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그 본질을 새롭게 변형한다는 도전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미술은 단순히 비극을 '기록'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비극적 현실이라는 ‘텍스트'에 개입하여 그 맥락을 바꾸는 ‘주체'가 된다.
세상이 전쟁의 참화로 불타는 풍경을 미술이 단지 풍경으로 여기며 남의 사정으로 담 넘어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술이 인간과 세계에 가하는 날카로운 상처와 폭력은 더 큰 살의와 악의라는 폭력을 약화시키는 백신과 같다. 일종의 면역체계로서 작동하는 미술의 기능을 떠올려보면, 지금은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미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미술관의 전시 기획은 ‘작품’을 단순히 벽에 거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맥락과 사회적 긴장이라는 ‘액자'를 짜는 일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전시기획자는 전쟁의 살의가 만연한 시대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대중에게 ‘비판적 면역'을 배양하는 백신을 처방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공립 미술관이 단순한 관람의 장을 넘어, 세계의 비극에 개입하는 적극적인 ‘해체와 재구성'의 현장이 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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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암 미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