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 직격탄 맞고 조직에 순응한 낀 세대
▶ 자식뻘인 Z세대와는 “친구처럼”
서태지와 아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 '환상 속의 그대'(1992)의 노랫말이다.
'환상 속의 그대'는 X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이 노래가 나올 즈음, 운동권의 퇴조와 함께 새로운 세대, 뉴 제너레이션이 등장했다. 엉덩이에 걸친 듯한 힙합바지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기성세대에 반항하며 문화와 소비에 탐닉한 세대였다. 그들의 등장은 '서태지와 아이들'만큼이나 강렬했다. X세대 이야기다.
X세대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80~90년대는 호황기였다. 경제는 매년 10% 가깝게 성장했고, 수입 물품도 대거 들어왔다. 나아지는 살림살이 속에 X세대는 워크맨 카세트로 음악을 들으며 등교했고, 주말에는 홍콩영화를 봤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이라 가끔 최신 일본 문화를 몰래 향유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선 작가 김영하의 말처럼 "마르크스가 떠난 자리에 푸코가 들어앉았"다.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 선배들"이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며 투쟁가를 부르다가도, 술자리가 파하면 세상 어려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며 지적 유희에 빠져들기도 했다. 선배인 운동권과 가까우면서도 소비적·문화 지향적인 X세대만큼 "강렬하게 등장해서 존재감을 드러낸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던 X세대가 갑자기 사라졌다. 탈권위적이고, 반항적이었던 그들이 취업하면 남성중심적이며 권위적인 회사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도 있었으나 고압적인 회사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IMF 직격탄을 맞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X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조직에 순응하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베이비부머(1955~1969년 출생) 상사들에게 감히 반기를 들지 못했다. 후배들에겐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밀레니얼 세대(1980~1995년 출생) 이하 후배들이 정시에 퇴근하고, 때에 맞춰 연차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당돌함에 기가 차면서도, 심적으로는 동의했다는 점에서다.
대홍기획 데이터인사이트팀은 신간 '세대 욕망'에서 X세대와 관련, "탈권위와 개인주의를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받아들인 나머지 스스로 정치적으로 연대하거나 권력화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분석하는 견해도 있다"고 소개한다.
어떤 연유로든 X세대는 조직 질서에 순응하며 빠르게 기성세대에 편입했다. 20대 당시 그토록 소비적이었건만, 40~50대가 된 지금은 자린고비가 됐다. 그들은 자신에게 쏟는 소비 금액이 전 세대 중에서 베이비부머와 함께 가장 적었다. 취미 활동에 투입하는 월평균 금액은 Z세대(1996~2009년 출생)가 23만원으로 가장 많고, 밀레니얼(21만원), 베이비부머·X세대(각 18만원) 순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장소, 핫플레이스에 가보고 경험하는 것은 나에게 즐겁고 중요한 일이다'라는 문장에 대한 세대별 동의도 조사에서도 X세대는 가장 낮은 수치(43)를 보였다. 선배인 베이비부머(48)보다도 현격히 낮은 수치다.
자기를 위해 돈도 안 쓰고, 반항도 접어뒀으며 문화생활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2천명에 대해 설문을 진행했고, 소셜네트워크 빅데이터 10년 치 등을 분석한 대홍기획 조사에 따르면 그들은 "가정"으로 갔다. 그들은 "20대의 화려함을 뒤로한 채 성실하고 가정적인 부모"가 됐다. 자식뻘인 Z세대와 사이가 좋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Z세대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부모(X세대)와의 관계가 가장 좋았다.
X세대에 대한 책의 결론은 이렇다.
"X세대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있다면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관념을 형성한 것이다.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까지만 해도 가족보단 바깥일을 더 열심인 아버지 모습이나 권위적이고 엄격한 부모상이 보편적이었다면, X세대는 부모가 그랬던 것도 아닌데 친구 같은 부모가 되기를 자처한 첫 세대다. 자녀에게도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인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 개인의 희망과 자유와 개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세대의 중년과 노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