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대의 영웅은 어떻게 나오나?

2024-03-22 (금)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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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제국 거란의 끝없는 침략과 집요한 괴롭힘에 맞서 마지막 결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강감찬의 나이는 72세였다. 늦은 나이인 36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지만, 62세인 1009년 목종 말년에 예부시랑이 되어 중앙정치에 등장하기 전까지 26년 동안 지방 관직을 전전했다. 조선시대 야사집에는 강감찬은 백성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만능 해결사로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마도 정치투쟁이 빈번한 중앙 정치보다는 지방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정책을 펼치면서 나라의 실정과 백성들의 삶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중앙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거란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침략하자 모든 대신들이 항복을 하자고 했지만 홀로 전략적 후퇴를 내세워 현종의 몽진을 주장하면서였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고, 고려는 항복하지 않고 전쟁과 외교를 통해서 거란군을 철군하게 하였다. 이후 동북면행영병마사가 되어 거란과 여진의 변방으로 나아가 여러 번의 대소규모 전투를 지휘하면서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거란의 3차 침입이 발생하자 고려군 총사령관인 상원수가 되어 한반도 역사에 남는 3대 대첩의 하나인 귀주대첩이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35년 동안 지방관직에서 중앙관직까지, 문인에서 무인까지 모든 경험을 쌓은 강감찬은 하늘이 고려를 위해 준비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렴결백했고 큰 공을 세우고도 권세를 누리지 않아서 권력투쟁의 회오리바람에도 평안하게 말년을 보내고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받았다. 물론 현종의 사람 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기에 강감찬의 뛰어난 지략과 군 통솔 능력을 보고 고려군 총사령관 자리를 맡겼던 것이다.


한산대첩의 영웅, 이순신의 역사도 강감찬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한때 운이 좋아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신념과 의지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여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일꾼으로 준비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능력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어서 빛나는 역할을 할 수가 있었다.

왕조시대에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있어도 군주가 사람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지 못해서 위기를 만들고, 심지어 외적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힘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백성들은 성군을 만나야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 수 있었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다. 시민이 직접 경험과 실력으로 준비된 사람을 나라를 책임지는 지위에 선출해야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는 시민의 기본 능력이자 의무이다.

그런데 정적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에 눈이 멀어 옥석을 구분할 줄 모르거나, 나라의 전체 이익보다는 자신과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면장도 안 해본 사람을 뽑으면 왕초보가 고속도로에 버스를 몰고 나가는 것과 같은 국정 운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옛말에 면장도 뭘 알아야 시킨다고 했다. 유능한 정치 일꾼들은 화려한 말보다는 해당 직위에 맞는 경험과 업적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부패하지 않고 올바른 활동을 한 경력이 중요하다.

2024년 대통령, 연방상원, 연방하원, 주 상하의원을 선출한다. 우리 모두 이런 기준을 가지고 정말 좋은 정치 일꾼들을 찾아내고 선출해야 할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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