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로 인기를 모았던 고려 거란 전쟁은 26년동안 3차례에 걸쳐 일어났고, 마침내 고려가 최종 승리를 하면서 끝났다. 당시 동아시아에는 대국 거란과 송 그리고 소국 서하와 고려가 있었는데 이들 사이의 서열 정리가 꽤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동아시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거란에 대해 송은 덩치 값을 못하고 조공관계를 유지했지만, 이들에 비해 작은 국가였던 서하와 고려는 이들 두 대국을 가지고 놀았다. 그래서 거란은 그런 고려를 3번이나 침략했지만 결국 패하였다. 승리한 고려는 평화와 실리를 앞세워 거란의 연호를 사용했지만 송과의 관계도 맘대로 하면서 거란과 송으로 부터 필요한 것은 다빼먹었다.
26년동안 3차에 걸친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정확하지 않은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승전국 고려가 선택한 방식으로 두나라는 관계를 정립하였고, 1125년 거란이 금나라에 멸망 당할 때까지 동아시아는 근 100년 동안 전쟁없는 번영과 평화를 누렸다.
멀리 있는 국가와의 관계 설정은 명확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간에는 명확한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관계설정을 놓고 인류는 늘 전쟁을 하였다. 물론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 협력과 연대라는 새로운 관계설정을 한 유럽연합도 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붕괴후 서구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서구는 철저히 봉쇄를 했고 러시아는 폭망했다. 그러다가 유라시아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들고 푸틴이 나타났다.
푸틴은 러시아는 유럽이나 아시아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유라시아라는 지정학적 개념의 중심지라는 유라시아주의에 기반하여 러시아의 길을 가야한다는 논리로 러시아를 결집 시키고 재건하였다. 그리고 서구에 대해서 나토의 동진을 멈추고 관계 재설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는 러시아의 요구를 묵살하고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나토의 동맹으로 가입시키려 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에서 한솥밥을 먹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문제는 고려와 거란이 완전히 자기의 생각과 힘으로 승부전쟁을 해서 관계 설정을 했던 것에 비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현상적으로 두 나라간의 전쟁이지만 본질은 러시아와 서구의 전쟁이다. 그래서 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고 더 확전이 된다면 그것은 핵무기를 동반한 3차 세계대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반 러시아의 맹주 미국이 정치분열로 그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구는 급격하게 러시아와의 전쟁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사실 서구는 나토(NATO)라는 군사동맹을 형성하고 있지만 냉전 해체 후 미국만 믿고 모두 다 군비를 축소하였다.
군비를 지금 당장 늘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군수공장을 세우고 군수공장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군인들을 모집하고 훈련 하려면 빨라야 10년은 걸린다. 그런데 미국의 극심한 정치 분열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이 안되니 모든 전쟁물자를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선은 거의 붕괴 상태에 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승리를 위해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면 본인의 대통령 재선도 물건너 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알고 있는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찬성을 할 수가 없다.
미국의 대선이 끝날때 쯤이면 어쩌면 우크라이나의 국기가 더이상 나부끼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서구와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명확히 하는 정전협정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탈냉전 30년만에 서구와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놓고 일어났는데 70년이 된 한반도의 휴전협정은 언제 끊어질지 모를 고무줄처럼 긴장이 팽팽 해져 있다.
요즘 미국의 조야에서는 끊임없이 한반도 전쟁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70년 응축된 긴장이 대폭발 하기 전에 협상으로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경고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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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