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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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봄이 오는 길목에서

2024-03-11 (월) 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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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도 경칩도 / 머언 날씨에 / 그렇게 차가운 겨울인데도 /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 호흡은 가빠 이토록 뜨거운가. // 손에 손을 쥐고 / 볼에 볼을 문지르고 / 의지한 채 오늘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이라. //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 나무는 나무끼리 / 짐승은 짐승끼리 / 우리는 우리끼리 /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신석정 시인의 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

3월 5일은 경칩(驚蟄)이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두꺼운 외투의 내피를 걷어내는 홀가분함과 외투를 입을까 말까 하는 주저함이 어우러져 끝끝내 갈팡질팡 하게 한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가 봄을 더욱 기다리게 한다. 봄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봄을 기다린다. 그 봄은 우리의 마음으로 먼저 느낀다.

멀리 애틀랜타 등 남녘에서 지인이 보내준 수선화와 만개한 목련풍경 사진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더욱 부추긴다. 아직 천지는 여전히 갈색이지만 땅에 귀를 바짝 대고 두 눈을 꼭 감으면 땅속 깊숙이서 녹색 기운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린다. 봄은 산과 들에서 죽은 듯이 잠자던 풀과 나무, 개구리와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고, 새싹이 솟아나는 계절이다. 봄을 영어로 번역하면 ‘Spring’이다. 이 말은 용수철을 뜻하는 영어단어와 같다.


Spring이란 단어에는 ‘활력, 튀어 오름, 솟아오르다’와 같은 뜻도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겨울 다음에 오는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하고, 가슴마저 부풀게 한다.

오래전 이맘때, 이 지면에 ‘ 3월의 센트럴 팍’이란 제목의 글을 쓴것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읽어 본다. 어느덧 20년전 쓴 글이다. 내 나이 쉰 아홉때였다. 같은 계절, 같은 장소를 걷는데도 감정은 그때보다 무뎌진 것을 느끼며 혼자서 중얼댄다. “얇은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기다리는 마음에도 세월은 가노니,,, 봄버들 늘어지면 내 인생도 함께 늘어지거늘, 파랑새 되어 찾아간들 늘어진 가지에 앉을 수나 있으랴“는 탄식과 상실감에 젖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 나이에 봄이 온다고 신이 날 일도 없다. 잔 주름진 아내의 얼굴이 금방 새색시 얼굴처럼 화사해 지는 것도 아니요, 어느 한 가지 내세울 것 없는 나같은 늙은이에게 당장 더덩실 춤출 일이 벌어질 것도 아닌데도 기다려지는 게 봄이다. 한두 해 맞이하는 봄도 아닌데 정해 놓은 혼사 날 기다리는 처녀 총각의 설렘처럼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무미 건조하며 마주치는 도시인들의 감정에도 무디기만 하다.

봄을 봄답게 맞이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만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즉, 마음에 기쁨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 바라는 바가 있어야 봄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봄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외로운 마음의 신음, 우울, 무기력으로 희망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열정도 없다면 봄이 온들 어이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랴? 얼이 아름다워야 봄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가 기다리는 것은 마음의 봄이다. 나의 마음의 기쁨이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향하여 자유로이 움(萌)을 뿜고 자엽(子葉)을 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의 르네상스이다. “하나님! 저에게 마음의 봄, 마음의 르네상스를 허락해 주소서! ” 하고 두손을 모은다.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시간, 어느 병실에서 또는 어느 감옥에서 육신이 건강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해 봄을 기쁘게 맞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생각하며 앞으로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봄을 내 인생에 다시 한번 허락하심에 하늘에 감사드리며 겸손과 기쁨으로 소중히 맞이 해야겠다.

뉴욕에도 마침내 봄이 솟아났다. 봄이 오똑 일어섰다. 움츠렸었던 내 마음도 이와같이 새롭게 솟아나야겠다. 나도 그렇게 굳세게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어주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하리라.

<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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