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3월은 수줍은 청년

2024-03-11 (월) 윤관호/국제 PEN 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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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이다. 수선화 새싹 위에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을 보고 애처롭게 여겼다. 꽃을 피우고 말겠다는 수선화의 의지가 고난을 견뎌내고 꽃을 피워 ‘자기 사랑’ 이라는 꽃말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수선화 꽃이 필 때쯤 개나리 꽃잎도 나오기 시작한다. 물러가던 추위가 다시 와 겨울의 기운과 봄의 기운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기도 한다. 떠나야 할 때 떠나야 아름다운 모습이거늘 지나치게 오래 버티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리라. 개나리 꽃잎 위에 진눈깨비가 쌓인다.

개나리는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봄의 행진을 멈추지 않더니 꽃을 피워 주위를 밝힌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나면 나무들이 앞 다투어 꽃망울을 트이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추위와 눈보라를 오랜 기간 겪은 매화나무 고목일수록 예쁜 매화를 많이 피운다.


옛날 산골에 사는 한 청년이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죽자 무덤 앞에서 매일 슬피 울자 그 자리에 한 나무가 돋아났다. 청년이 그 어린 나무를 집에 가져가 마당에 심고 그녀를 보듯이 돌보았다.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사람들이 매화나무라고 불렀다.

그 매화나무 곁을 떠나지 않던 새를 휘파람 새라고 하였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결백, 기품, 품격이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세한삼우라고 하며, 난초, 국화, ·대나무, 매화를 사군자라고 한다.

매화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선비의 품격을 나타내는 꽃이다. 시류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고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그립다. 호숫가 수양버들이 연초록을 띄운다.

물위에 떠있는 나뭇가지에는 자라들이 올라와 햇볕을 쬐고 있다. 청둥오리들이 호수 위에서 자맥질도 하고 여유롭게 다닌다. 보이지는 않지만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리라.

갈대밭 가장자리에 백조가 알을 품고 있다. 밤이나 낮이나 찬바람에도 알을 부화시키려 꼼짝 않고 알을 품고 있다. 비 오는 날도 자리를 뜨지 않고 온몸으로 알을 감싸고 있다.
동네 연못가에서는 겨울 잠에서 깨어 난 개구리가 기지개를 펴고 몸을 푼다. 새들은 떼를 지어 봄날을 맞아 창공을 자유롭게 날며 비행훈련을 한다. 계곡 개천에선 물소리가 웅장한 교향악 소리를 낸다.

3월에는 건강한 남녀노소 누구나 활발히 움직이려 한다. 겨울에 꾼 꿈을 본격적으로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시작하는 달이다. 3월은 수줍은 청년이다.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한다.

<윤관호/국제 PEN 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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