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감독(59)의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요즘 한국에서 예상외의 인기를 끌고 있다. 2월 17일 집계 53만 5595명으로 영화관 관람객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관객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아마도 1위 기록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 영화사상 다큐영화로는 기록을 깰 전망이다.
이 영화가 곧 미주에도 도달하여 워싱턴지역에서도 곧 상영이 되리라는 소식이다. 그 때 영화 전편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 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된 이 영화의 내용 가운데 내가 직접 경험했던 장면들이 몇 군데 보여서 이 글에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첫 장면은 폭파된 한강 인도교 옆에 설치된 부교를 통해서 강을 건너 남쪽으로 오는 서울 시민들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당시 나는 13살 중학교 1학년이었으며 한강 인도교가 보이는 서울 영등포구(현 동작구) 흑석동에 살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북한군이 개성 송악산을 넘어 남침했던 그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한 비행기가 한강 인도교 위를 지나 우리가 수영하고 있는 물 위로 날아갔다. 이 비행기가 북한군 전투기였다는 것을 서울중앙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튿날 월요일 학교에 등교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38선에 북한군이 침투하는 큰 사고가 나서 휴교를 한다면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며칠 후 6월 28일 새벽 우리 집채를 흔든 ‘쾅'하는 소리가 동네를 진동했다. 아침 한강가 산 위에 올라가 보니 한강 인도교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얼마 후 그 옆으로 놓인 부교를 걸어서 남쪽으로 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근무하고 계셨던 외삼촌과 가족이 이 부교를 건너 우리 집에 머물고 계셨다. 나는 부교가 놓인 이 영화 장면을 보면서 그 동안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 인도교를 끊고 혼자 남쪽으로 도망가 수천명의 시민들이 절단된 다리에서 떨어져 희생을 당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4.19혁명의 불씨가 되었던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을 때 대학 4학년으로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4.19의거의 발단이 되었던 3월 15일 ‘김주열 군 시체' 사건이 마산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3만여명의 마산시민들이 자유당 관계 시설을 부수는 사건이 일어났다.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명이 종로에서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할 때 마침 휴가 중이어서 이 데모를 목격할 수가 있었다. 4월 19일 대학 친구로 부터 경무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한다는 소식이 왔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 거리로 갔을 때 경무대 앞에서 경찰과 대학들이 대결하고 있었다. 경찰의 무차별한 실탄사격으로 동료 학생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데모는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대통령이 ‘국민이 원한다면' 다음날 27일 날짜로 하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건국전쟁' 다큐영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경찰의 총탄에 맞아 부상당해 병원에 입원해있는 대학생들을 방문할 때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나온다. 3.15부정선거는 당시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씨가 당시 우세한 입장에 있던 장면 부통령 후보를 꺾기 위해 음모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사퇴를 했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1969년 봄 미국으로 유학오기 전 한국 일간지 대한일보 사회부 기자로 8년동안 근무하면서 1966년 6월부터 유학 오기 전까지 3년간 6.25전쟁 토요일 특집 ‘판문점'을 집필했다. 이 특집은 6.25전쟁 휴전협상에서부터 반공포로 석방 전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위원장 문희석장군)자료, 관계자 인터뷰, 그리고 관계 개인자료들을 통해서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어나갔다.
인터뷰와 관계 개인자료는 휴전협정 한국측 대표였던 백선엽 장군과 이형근 장군, 특히 당시 영국 대사직을 퇴임하고 자택에서 머물고 있던 이형근 대장은 휴전협정 회담에 관련된 중요한 자료와 증언으로 취재를 도와주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인터뷰와 자료는 8만명의 북한군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4천명의 반공포로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300여명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도록 인도한 옥호열 선교사님(Harold Voelkel, 1898-1975)과 옥 목사님의 도움으로 목회자가 된 반공포로신우회(회장 현순호 목사) 회원들(약 40명)과의 인터뷰와 자료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보여준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관계 장면은 나의 옛날 기자생활 때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꼭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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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