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회원

2023-12-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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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없는 길”

무작정 길을 걷고 있다. 평소에 걷던 익숙한 산책로가 아니다. 미지의 곳이고 처음 발을 디딘것 같다. 길이 없다는 두려움이 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물안감이 휘감는다. 인적이 없는 곳이다. 저멀리서 누군가 나를 마주 보며 걸어오고 있다. 한사람이 겨우 걷기에 족한 좁은 길이다. 마침내 가까스로 서로 몸을 스치며 지나간다. 몇발짝 떼고 서로 돌아 보았다. 혼자 길을 가는 내가 안타까워 보인다는 듯한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지긋히 응시한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길을 몰라, 애타는 마음으로 길을 물으려 하는데, 어느새 홀연히 사라졌다. 꿈이었다.
배낭 하나 메고 길을 찿아 떠났다. 마음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을 무수히 섭렵을 했지만 돌아서면 내 마음에는 갈증만 남았기에. 마치 아무리 애를 써도 남의 다리의 가려움만 긁는 느낌처럼. 아무에게도 물을수도 들을수도 없어, 타는 목마른 마음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을 묻기 위해 간 곳은, 설악산 자락에 있는 300여명이 함께 정진하는 참선방이었다.
하얀 눈으로 덮힌 산 기슭에 안긴 선방은 많은 수행자가 있지만 거의 묵언으로 자신의 수행을 하기때문에 사람이 없는듯 고즈녁 했다. 댓돌위에 신발을 벗기전, 밖으로 조건 지어진 모든것을 마음으로 놓고, 빈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남에게 불리어 지는 이름, 성별, 빈부, 나이, 지식의 유무, 사회적 위치등등. 오로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생명체로서 오직 자신의 마음을 의지해 참 자유를 찾아 내면으로 떠나는 길없는 길을 가야한다. 오래전 꿈에서 처럼 누구도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찾아가야 하는 긴여정이다. 먼저 걸어간 분들의 불빛을 의지해서.
새벽 3시에 기상하여 밤 9시 취침때까지 밥먹고 청소하는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동안 묵언 정진을 한다. 아니 엄격히 말해 모든 순간에 나자신과 마주하며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쌓였던 관념들, 교육을 통해 알고있는 지식들을 모두 놓아 버리고 쉴새없이 출렁이는 마음의 물결이 일어나는 뿌리를 향해 쉬임없이 가는 길이다. 그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느끼는 내안의 나를 안고서 미지로의 길을 걸어간다. 내가 나를 규정해 덮어 놓았던 시멘트를 걷어내고, 나를 싸고 있던 모든 포장들을 뜯어내고, 내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놓아 버리고 내안에서 펄펄 살아있는 나를 찾아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습관 되어진 번뇌 망상들이 세차게 밀려오는 거센 물살같이 쉬임없이 밀려온다. 마치 밑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세찬 물결을 거스르는 것마냥 힘겨운 길이다. 하지만 나에대한 새로운 도전이고 모험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아를 탐구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이기도 하다.
길이 없다는 것은 막막하고 두렵지만 지금껏 찾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수 있다. 세상에는 가끔씩 자신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길없는 길을 걸으며 훌륭한 발자취를 남겨놓는 개척자들이 있다. 살아 간다는 것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언제든지 자기만의 길을 갈수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길위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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