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회원

2023-1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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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유전자”

산책길 바다가 한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가고있다. 곧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석양이 하루종일 품어 익힌 사랑의 빛을, 온힘을 다해 쏟아내고 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언덕받이 계단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편히 앉아, 그 황홀한 빛을 가슴에 담고 있다. 고요한 시선을 멀리 두고. 파도소리에 사랑의 언어들을 묻고 있다.
영롱한 사랑의 씨앗을 품은 아침해는 온갖 변화에 묵묵히 견디며 사랑의 씨앗을 가꾼다. 가끔은 견디기 어려운 암흑속에서 헤메기도 하고 슬퍼 눈물도 쏟으며 사랑을 지킨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에 순종하며 인고의 시간들을 감내한다. 마침내 사랑이 터질듯이 익으면 온갖 신비로운 빛으로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내며 자신을 버린다.
그 찬란한 기쁨속에는 가슴이 에이는 듯한 슬픔을 품고 있기도 한다. 눈부시어 쳐다보기도 어려울듯한 밝은 순간 속에서도 앞을 볼수없는 암흑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고, 마음이 찢어질듯 아픈 순간에 따뜻한 손길로 치유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한순간도 거부할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영원히 애절한 그리움이다. 사랑은.
사랑은 나의 생명을 살게하는 힘이다. 사랑으로 걷는 발걸음은 가볍고 머무는 눈길마다 빛이 난다. 반면 사랑의 불꽃이 꺼지면 나를 망치게 하는 온갖 마음의 쓰레기들이 나를 덥쳐서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할때 사랑의 씨앗을 챙긴다. 나의 의미있고 행복한 하루를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다람쥐 체바퀴 돌듯하는 날마다의 일상이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를 잘알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그 연약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짬짬이 마음을 살피는 것이 내마음이 피로로 찌드는 것을 막아준다. 될수있으면 같은 말이라도 마음을 담아서 따뜻하게 하고, 습관된 몸짓이 아니고 습관된 눈길이 아닐수 있도록, 순간순간에 깨어있을수 있게 나를 자주 챙겨본다. 그렇지 않으면 습관되어진 일상의 몸짖은 어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고, 오늘도 그럭저럭 보내려는 세찬 물살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원인은 사랑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존재하는 이유도 사랑이어야 하리라. 온갖 부정적인 마음으로 두꺼운 껍질에 싸인 씨앗이, 그 껍질을 뚫고 나올수 있게 노력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목적일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은 그 껍질을 뚫으려는 나의 최소한의 몸부림이라도 있어야 하리라. 시기와 질투, 온갖 욕심, 열등감, 자만심등등. 그 껍질은 얼마나 견고한지 때론 나에게 심한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돌뿌리에 넘어져 피를 철철 흘리게도 한다. 쓰리고 아파하며 겨우겨우 나의 껍질을 보게된다. 벗겨진듯 하다가도 살만해져서 조금만 방심하면 곧 새껍질이 덮히고 만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서서히 눈이 옛날처럼 밝지가 않다. 아마도 오랜 세월동안 너무나 밖으로만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할수없이 조금씩 안을 들여다 보게된다. 내안을 보는 눈은 시력에 관계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마음으로 볼수있기 때문이다. 하룻길을 마치고 아름답게 지는 석양처럼,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작은 사랑의 빛이나마 내뿜고 갈수있기를 스스로 바래본다.
인류가 그 파란만장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헤치고 살아남아, 장구한 세월동안 도도히 흐를수 있는 것은 우리안에 강력한 사랑의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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