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무언가를 시작해야 온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무언가의 시작이 있어야 내가 끝을 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시작으로 인해 끝을 내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음'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들이 참 많다.
내가 시작하지 않은 내 인생의 시작!
내 인생의 시작은 세상의 빛을 보기 전부터 아픔으로 시작되었다.
엄마의 인생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그때 나는 시작되었고 내 모습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엄마의 아픈 선택으로 나는 두 번이나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다행히 그때마다 엄마의 배를 힘껏 차며 내가 엄마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한다.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나는 태어났다. 그러나 엄마의 삶은 여전히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를 안고 흔들거리며 재워줄 여건도 안 되었고, 울어도 누구 하나 달려와 달래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늘 혼자 울다가, 놀다가, 자다가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날들 때문이었을까? 살아가면서 텅 빈 방 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는가 보다. 몸은 약해 수술을 여러 번 해야 했고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뭔지 모를 아픔들이 나의 삶 안에 늘 ‘어쩔 수 없음’ 으로 함께 했다.
몇 달 전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엄마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3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또다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를 데리고 강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때도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나는 3번째 죽음의 길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엄마를 따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3살 된 어린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눈물이 흐르지 못해 목으로 삼켜지며 잠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때 나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신나 흥얼거리다 하늘을 가리키며 새가 날아가고 있다고…
손에 꽃을 들고 노래를 하며 이 꽃 좀 보라며, 여기저기 가리키며 너무나도 이쁜 웃음으로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한다.
엄마는 가던 길을 더 이상 갈 수가 없으셨다. 나를 부등켜안고, ‘선주야 살자. 그래, 같이 다시 살아보자. 고맙다.’를 외치고 또 외치시며 그 길을 내려오셨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돌리셨다. 죽는 길이 아닌 나와 함께 살아내는 길로.
그 엄마의 선택은 신앙과 함께 우리 가정을 살리셨고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아내셨다.
내가 시작하지 않아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아픔의 시작이 드디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선주야! 네가 나를 살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렇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나의 시작은 죽는 것이 아니였다. 엄마를 살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