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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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마을

2023-12-12 (화) 서윤석 워싱턴문인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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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창문에 부딪치는 날이다
언니는 살며시 감은 아우의 하얀 눈꺼풀 위에
보드라운 붓으로 푸른 아이라인을 그린다
집중된 시선과 능숙한 손길로
웃음을 참는 분홍 입술 위에 그려진 송곳니가 반짝인다
빰에 붙은 검은 고양이도 박쥐도 우린 무섭지 않다

온 세상이 맑고 하얗고 따뜻하다
눈이 나비처럼 춤을 추며 떼를 지어 내려와 쌓인다
언덕 위에서 붉은 볏을 흔들던
야생 칠면조들의 발자국도 덮혔다
아이의 이마에서 할로윈 호박이
노란 스쿨버스가 되어 눈길을 굴러간다

녹아내리는 눈송이를 맞으려고 뜰로 나온다
사각사각 신발자국이 찍힌다
낮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발가벗은 자작나무 숲속으로 날아간다
나무가 타서 남기는 기도문이다
고향집 부엌에서 아이들의 저녁밥을 짓던
어머니의 하얀 입김이다

<서윤석 워싱턴문인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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