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

2023-12-05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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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경제학자들이 분석해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SAT 성적과 경제력 간의 상관관계 조사는 돈이 많은 집안 자녀들일수록 SAT 점수가 확연히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수험생 부모의 납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연구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 3명 중 1명은 연소득이 1,130만 달러 이상 되는 상위 0.1% 가정 출신이었으며 하위 20% 가정 학생들이 고득점자에서 차지한 비율은 0.6%에 불과했다.

SAT 점수가 집안의 돈을 따라가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사실은 지난 2017년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집안 자녀들은 1,600 만점에 1,400점 이상을 기록할 확률이 다섯에 하나인 반면 연 소득 2만 달러 이하인 가난한 집 자녀들은 그 가능성이 오십에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과 정의라는 문제에 천착해오고 있는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집안의 경제력과 SAT 점수 간 상관관계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지금처럼 점수 위주의 평가가 아닌, 제비뽑기로 대학 입학생들을 선발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 선발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약간의 SAT 점수 차이는 대학에서의 학습능력과 거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입학 정원의 3배 정도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너무 점수가 형편없는 일부 지원자를 제외한 후 나머지를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통해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의 의미에 더 부합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는 비슷한 수준의 학습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약간의 SAT 점수 차이로 갈리는 명문대 입학여부가 사회에 나온 후 성공 가능성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 1점의 점수 차이로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은 1점 차이로 미끄러진 학생보다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무려 50%나 더 높았다는 연구도 있다.

집안의 경제력과 SAT 점수 간의 상관관계는 왜 ‘빈익빈 부익부’의 사이클이 갈수록 고착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부모와 자녀 소득 사이의 상관관계는 키의 유전적 영향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돈 많고 잘 사는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그저 운일 뿐이다. 어느 억만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궁의 로토’를 맞은 것뿐이다.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가 작용한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행운으로 주어진 그런 환경은 SAT 점수 격차가 말해주듯 추후 그들의 일생에서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계속 작용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행운과 성공에 관계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는 코넬 대학 로버트 H 프랭크 교수는 자신의 책 ‘성공과 행운’(Success and Luck)에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착각은 자신이 성공한 이유가 오직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일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인데 왜 내 돈을 정부가 빼앗아 가려 하느냐며 반발한다.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노력부족과 태도를 탓하려고만 들고 이들을 돕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가 성공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더해 이런저런 행운과 우연들이 작용한 결과일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무수한 도움, 그리고 모두의 부담으로 구축된 인프라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부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은 적극적인 기부와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떠안으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정의론 논쟁에서 아주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철학자 존 롤스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날 자격이 있다거나 애초부터 사회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눠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다.


살아생전에 8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재산을 다 나눠주고 지난 10월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칸짜리 소박한 아파트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면세점 업체 DFS 창립자 척 피니의 일생은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누는 일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간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피니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그는 아주 호사스럽게 살던 50대의 어느 시점부터 과연 자신에게 많은 돈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공의 본질을 되돌아보는 각성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는 20여 년 전 기부서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에 개인적으로 헌신하는 것보다 더 보람되고, 부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누는 일에 피니처럼 천문학적 재산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또 꼭 돈만이 그런 이타적 행위의 도구와 매개가 되는 것도 아닐 터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은 서로의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쯤은 곱씹어 보기에 좋은 절기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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