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제는 누가 더 잘하나

2023-11-07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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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출범 1년 반 동안 내내 전 정부 탓만 해오고 있다.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전 정부를 비판하고 탓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정 건전성과 전세사기, 원전 등 경제문제, 그리고 대북관계 등 안보 문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 세계 잼버리 대회 파행까지 전 정부 잘못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린다. 심지어 자연재해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 이 또한 전 정부 탓이라고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문재인 탓”이라는 프레임을 전방위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전 정부 탓만 하는 이런 태도에 많은 국민들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런 기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로 표출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내년 4월 한국총선에서는 ‘전 정부 심판론’과 ‘현 정부 심판론’이 극렬하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 정부의 공격 타깃이 돼온 문재인 전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 5돌 기념식’ 인사말을 통해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 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계속되는 공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를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현 정부 관계자들도 가만있지 않고 “이 같은 발언은 오염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되받아쳤다. 문재인 정부 통계 담당자들에 대해 조작 의혹 수사를 펴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는 평가에 주관적인 요소가 많아 누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분기별 연도별로 성과를 객관화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또 이념적 성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경제는 수치로 성적표가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우열을 따져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률을 보면 보수와 진보정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2003년 이후를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연 평균 4.7%, 이명박 정부 3.3%, 박근혜 정부 3%, 문재인 정부는 2.3%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며 윤석열 정부의 올 성장률 전망치는 1.4%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집요하게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비판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시절 경제성적표는 한국은행 수치가 증명하듯 상당히 양호했다. 일그러진 언론들이 만들어낸 프레임과 실제 경제현실은 크게 달랐던 것이다.

다만 압축성장기였던 박정희 집권 시절(1961~1979년) 연 평균 성장률은 무려 9.3%에 달했으며, 이어 집권한 전두환 시절 말기부터 노태우 정부 초기까지의 3년(1986~1988) 동안은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 힘입어 연속적으로 10%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를 넘어 극우로 치닫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너무 형편없다.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올 예상 경제성장률이 지난 수십 년 간 계속 한국에 뒤쳐졌던 일본의 2.0%보다도 낮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현실은 “보수는 경제에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독재정권 시절의 높은 성장률이 바탕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정부 사이의 경제 성적표는 한층 더 극명하게 대비된다. 트루먼 정부 이후 오마바 정부 때까지 60여 년 동안의 미국 경제 성장률을 보면 민주당 시절과 공화당 시절 사이에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민주당 집권 시절에는 평균 4.35% 경제가 성장한 반면 공화당 집권기에는 2.54%에 머물렀다. 이것을 ‘D-R GAP’이라 부르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평가된다. 특히 국민들의 소득이 민주당 집권기에 더 늘어나고 그 증가폭은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더 컸다.

이처럼 민주당 정부 시절의 경제 성적표가 공화당 정부 잘 나온 것을 순수하게 진보의 실력으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상당 부분 운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시절에는 유가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고 생산성과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도 좋았던 덕분이라는 풀이다. 경제학자인 앨런 블라인더와 마크 왓슨은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 사이 경제 성장률 격차의 절반 정도는 이런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성장률 차이의 나머지 절반은 집권당의 실력과 정책의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경제수치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국은 차치하더라도 미국에서만큼은 “경제는 기업친화적인 보수가 더 잘 한다”는 통념을 ‘잘못된 신화’라 비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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