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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하나의 실수

2023-11-05 (일)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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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7일이면 선거일이다. 내가 거주하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는 매 해 선거가 열린다. 올해에는 주 상하원 의원, 카운티 정부의 수퍼바이저, 검사장, 법원행정처장, 보안관, 수질토양위원회, 그리고 내가 출마한 교육위원 선거가 열린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만 무려 50개 자리에 달한다.

그런데 그 중 지난 주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자리가 있다. 프랭코니아 디스트릭트(Franconia District: 이하 ‘프랭코니아’) 교육위원 자리이다. 프랭코니아는 페어팩스 카운티 내의 9개 디스트릭트 중 하나로 한 명의 교육위원이 선출된다. 내가 출마한 카운티 전체에서 선출하는 광역위원 자리에는 3명을 선출한다.

관심사로 등장한 이유는 최근에 공화당 측이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에 선거관리사무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그 소송에서 민주당계 후보자의 이름이 투표지에 실리는 자격을 박탈한다는 판결이 지난 주 수요일에 내려졌었다. 민주당계 후보자가 제출한 13장의 유권자 청원서들 중 한 장에 후보자의 집 주소가 잘못 적혀 있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것도 주소 중 4221로 썼어야 했던 것을 4229로 기입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숫자 하나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 판결로 인해 이미 인쇄된 투표용지에 그 후보자의 이름이 있더라도 그에게 투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그 후보자는 기명투표(write-in)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즉, 그에게 표를 주려면 투표지의 기명투표 칸에 그 후보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입해야 한다. 그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쉽지 않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선거운동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해당 후보자의 입장이었다.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에 대한 책임은 사실 페어팩스 카운티 선거관리 사무실에 있었다. 나도 후보 등록 때마다 서류들을 모두 선거관리사무소에 제출하고 그 사무소로부터 서류에 미비한 점이 없는지 연락을 기다린다. 만약에 하자가 발견되면 보충하고 제대로 갖추어 제출했다는 확언을 받으면 더 이상 등록 서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류들은 지난 3월에 제출되었다. 서류 제출 마감이 6월인데 그 보다 훨씬 일찍 제출한 것이다. 그리고 후보자는 선거관리사무소로부터 서류에 하자가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니 후보자로서는 더 이상 등록 서류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사전투표를 위한 투표지가 인쇄되었다.

해를 거듭할 수록 사전투표가 늘어나는 추세라 지난 주 판결이 난 시점에는 프랭코니아에서 이미 3천 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마쳤다고 한다. 그 지역이 민주당 초강세 지역임을 감안할 때 그 가운데 상당한 수가 그 후보에가 표를 주었을 것이라고 모두 추측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서 그 표가 모두 무효화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는 유권자들의 투표권에 대한 위헌적 박탈로 간주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민주당 측 후보는 소송에의 직접 참여와 그 판결에 대한 재심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에 재심이 열려 지난 주에 내려졌던 판결이 번복되었다. 판사는 선거관리 사무실이 일단 후보자에게 서류 검토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지를 했다면 후보자는 그 결정에 의존할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이번처럼 후보자가 추가로 제출할 수 있는 유권자 청원서가 있다고 했는데도 이미 제출한 서류로도 충분하다고 연락을 받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판결이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공화당 측에서는 민주당 후보자의 숫자 기입 실수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대신 투표지도 인쇄되고 이미 사전투표가 제법 진행된 상황까지 기다렸다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정당한 표 대결로 공화당 측 후보자가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변칙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의 사전투표는 이번 일요일까지 진행된다. 사전투표에 참여하거나, 그렇지 못한 유권자들은 화요일 선거일 당일에 모두 투표하기를 부탁한다.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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