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했다. 민심에 맞서려는 독선적이고 무능한 정권이 있었을 때 공화정에 훈련된 민주국가의 국민들은 인내심으로 지켜보다가도 투표라는 형식으로 그들의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해왔다. 옛날 같으면 혁명이라는 수단으로, 근래에는 탄핵이라는 극약 처방이 동원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수많은 약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민들이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안 대통령은 눈만 뜨면 철지난 이념 논쟁을 벌여 국민 분열이나 획책하는가 하면 해병대 사병 사망사건이나 1주기를 보낸 이태원 참사 등 연이은 대량 안전사고에도 철저하게 책임과 반성은 외면해왔다. 지난 달 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 결과는 그 같은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인사실패와 오만이 불러온 당연한 업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마침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추락했고 이러다가는 내년 총선 뒤를 기다릴 것 없이 임기 3년여를 앞둔 지금 이미 레임덕 현상은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자 매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군이었던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안 바뀌면 국정개혁은 다 물 건너가’느니 ‘대통령 심판했던 보선, 대통령 실 문책은 왜 없나’ ‘대통령이 달라지면 전화위복, 아니면 설상가상’ 등은 최근 보수언론과 극우논객들이 쏟나낸 사설이나 칼럼 제목들이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국가위기에 너무나 당연한 직언인 것이 맞다.
그러나 한국의 몇몇 보수 언론들이 정권과 공생관계 내지는 선도 그룹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든 것을 전 정권 탓으로만 돌리게 한 것도 이들이고, 민생보다는 반공이념으로 날을 세우게 하고, 검찰 감찰 수사로 공포정치를 부추긴 것도 이들이다.
아침마다 이들 보수 언론들이 방향을 잡아주면 대통령 실이나 여당은 그 내용을 그날의 지침으로 삼아 정책을 만들고 여론전을 펴나가고 있었다.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를 정교하게 작성하며 존재감을 과시한 논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홍보수석이나 공영방송 사장으로 발탁되는 순서를 밟아나갔다.
그러다가 국민의 반대여론이 들끓고 대통령의 지지세가 급락하자 이들이 표변한 것이다. 대통령 실이나 여당에서는 ‘때리는 시어머니(국민)보다 말리는 시누이(보수언론)가 더 밉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려면 진즉 그럴 것이지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냐’며 배신감을 말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바뀌기는커녕 비판적인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전 방위 압수수색을 벌이며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또다시 많은 후배 언론인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말리는 시누이들’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말기 청와대와 유력한 보수 언론 간에 심각한 갈등을 빚은 사건도 있었다. 그것이 탄핵의 전초전이었다.
뉴저지 단풍이 예년에 비해 아름답지 못하다. 더운 기후 탓에 단풍잎이 제때에 곱게 물들지 못하고 낙엽도 너덜너덜 맥없이 떨어지고 만다. 바뀌거나 떠나거나, 시절이 있는 법이다. 때를 놓치면 모두 추한 모습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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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