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새은/주부

2023-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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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의 글을 가장 기다리고 열심히 읽어주는 애독자는 우리 엄마이다. 딸의 생각을 알게 되어 새롭고 좋다 하면서도 별거 아닌 구절에서 마음 아파하신다. 내가 쓴 글을 보시며 '우리 딸이 이제 정말 어른이 돼 가는구나'라고도 하셨다.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난 철부지 딸이었나 보다. 30대가 훌쩍 넘은 요즘에서야 어른이 된다는 건 과연 뭘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중심이 나로 돌아가던 시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보기 시작하면서, 부러운 것들이 많아지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내기도 하며 마음이 커진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이다. 육아를 하며 벅찬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한 번씩 나의 밑바닥을 볼 때면 자괴감이 느껴졌다. 하루에 몇 번씩 인내와 후회를 반복하며 아프니까 청춘인 시절을 지나 육아의 쓰라림을 맛보고 있다.

한때는 내가 완벽하고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곱게 키운 나의 딸을 보며 사람들이 '발달이 빠르다, 예쁘고 똘똘하다' 같은 칭찬의 말을 해줄 때면 한없이 우쭐해지다가도 손톱만큼의 부족함을 보게 될 때면 풍선 빠진 바람처럼 고꾸라지곤 했다. 이런 마음이 너무나 하찮아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할 지경이었다. 폭풍처럼 흔들렸던 마음이 봄바람정도로 살랑거리고 나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스타일이라 딸의 마음도 나처럼 쉽게 다치지는 않을까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딸은 주목받고 싶어 하고 잘한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라 혹시 부족함을 마주할 때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보다 당당하고 단단했다. 미국에 와 언어적으로 뒤쳐진 상태에서 학교를 다닌 1년간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성장의 시간이었다. 선생님과 디테일한 피드백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그저 적응만 잘해다오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얼마나 잘할지 기대감보다는 즐겁게 학교를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니 딸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편안해지고 딸도 스스로 해내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넓어지고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잘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내려놓고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아이만 귀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여러 사건들을 뉴스로 보다 보니 정말 세상이 변했구나 싶다. 부모들이 애지중지 키우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커지고 피해받는 것을 못 견디는 게 된 것이 당연한 양상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우쭈쭈하며 딸을 키웠다면 앞으로는 아이가 작은 실패도 좀 겪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 한다. 뼛속까지 K장녀인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실패가 두려웠는데 딸에게는 좀 못해도 괜찮다는 것를 알려주고 싶다. 딸이 겪어 나가야 할 많은 문들이 있겠지만 조금은 편안하게 어른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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