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나는 올 시즌 초부터 응원했던 풋볼팀을 배신했다. 팀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고 단 한 선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팀에 별로 미안하지도 않았다. 사실 애초 그 팀을 응원했던 이유가 그 팀에 애착이 있어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에서 미시간 스테이트 대학과 럿거스 대학 사이에 풋볼 시합이 열렸다. 그 게임에 다녀오는 게 운전만 왕복 7시간 이상을 해야 하고 비도 제법 내려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티켓도 샀고 주차장 사용료도 지불했기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망설였던 것은 내가 응원하던 김노아 군이 더 이상 미시간 스테이트의 주전 쿼터백으로 뛰지 않을 것이 확실시 되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을 후보 선수로 있다가 올해 들어 처음 주전 선수가 된 노아 군이 팀의 3게임 연패 후 주전 자리를 후보 선수에게 내어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노아 군이 고등학교 선수였던 시절부터 열렬팬이었던 내가 그의 안쓰러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사실 팀의 시즌 초 2승 후의 3연패가 노아 군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지막 게임에서는 노아 군이 패스를 던질 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던 팀의 간판 리시버 선수가 게임 초 부상으로 더 이상 뛰지를 못했다. 그렇기에 팀의 공격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그리고 두 팀 모두 공격이 잘 안 풀려 수비의 선방에 많이 의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평소에 펀트를 잘 하던 펀트 선수의 실축이 큰 영향을 주었다. 상대팀이 그 실축을 터치 다운으로까지 연결해 미시간 스테이트는 급박한 입장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토요일 게임을 보면서 내심 미시간 스테이트가 지기를 바랬다. 그래야 노아 군이 다시 주전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외에는 복귀 방법이 달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새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노아 군이 다시 쿼터백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만 부상을 바란다는 것은 더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첫째 쿼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둘째 쿼터에서는 미시간 스테이트 팀에게 행운의 플레이가 몇 차례 있어 미시간 스테이트가 전반을 11점 차이로 앞선 채로 끝냈다. 전반 내내 노아 군은 헬멧조차 쓰지 않고 게임을 지켜 보았다. 그런 그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새로 주전으로 출전한 2년 후배 선수가 잘 하기를 바랬을까 아니면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간혹 팀이 수비를 하는 동안 간판 리시버나 새 주전 쿼터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그런 상황에서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찾아 들었다.
후반전에 미시간 스테이트가 다시 터치다운을 해 18점을 앞서 가는 상황에 다다랐다. 그리고 셋째 쿼터를 마칠 즈음에는 그냥 자리를 뜨고 싶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쿼터에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시간 스테이트 팀의 펀터가 놓친 공을 럿거스가 엔드존에서 잡아 7점 득점했다.
또한 그 다음 미시간 스테이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 간 후 럿거스가 또 터치다운을 했다. 그 후 럿거스가 길게 킥오프를 했다. 그런데 공을 미시간 스테이트 수비 선수가 받지 못했다. 대신 럿거스가 잡아 공격권을 유지했고 또 터치다운. 결국 럿거스가 마지막 쿼터에 21점을 얻으면서 3점 차이로 이겼다.
럿거스의 기적적 역전승이 거의 확실해진 순간 나는 내 옆에 앉아 관전하는 어느 여자 노인의 등을 다독거렸다. 럿거스 팀 색깔인 빨간색 겉옷을 입은 그 여자에게 축하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멋적은 웃음을 띄었다. 그리고 겉옷 안에 입은 다른 옷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미시간 스테이트라고 써져 있는 옷이었다. 온통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럿거스 팬들 사이에서 조용히 미시간 스테이트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래 미시간 스테이트에 배신의 마음을 가지고 럿거스를 응원하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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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