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의성은 예술적 삶의 행위이자 방식’

2023-10-06 (금)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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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머 뮤지엄 비엔날레 ‘메이드 인 LA 2023’

▶ 이강승·곽영준·문지영 등 39명 작가 참여

‘창의성은 예술적 삶의 행위이자 방식’

문지영 작품 ‘부엌에 있는 엄마’ (2016)

‘창의성은 예술적 삶의 행위이자 방식’

곽영준 작가와 작품 ‘Divine Ruin’ (My Face, 2021)


‘창의성은 예술적 삶의 행위이자 방식’

이강승 작품 ‘무제’ (쳉광치, 여동생, 오빠, 1980s, 2021)


해머 뮤지엄이 기획한 비엔날레 ‘메이드 인 LA 2023’이 한창이다. 한인 이강승, 곽영준, 문지영 작가를 포함한 39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이전 전시의 테마는‘삶의 행위’(Acts of Living)이다.“창의적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시각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 창의성은 삶의 행위이자 삶의 방식, 그리고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한 공식일 수 있다”는 왓츠 타워스의 명판에 새겨진 노아 퓨리포이의 명언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노아 퓨리포이(1917-2004)는 LA와 조슈아 트리에 거주하며‘와츠 타워스 아트 센터’와‘노아 퓨리포이 야외 사막 미술관’을 창립한 조각가이자 시각 예술가이다. 그는 사바토 사이먼 로디아가 33년에 걸쳐 건축한 불법구조물‘와츠의 탑’(Watts Towers·1921-54)을 사우스 L지역 예술 교육의 허브로 보존하기 위해 왓츠 타워스 아트 센터를 설립했다. 해머 뮤지엄 측은 이번 비엔날레는 이러한 정신을 구현하며 LA지역 예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개막해 12월31일까지 UCLA 해머뮤지엄에서 열리는 ‘메이드 인 LA 2023’은 올해 6회째를 맞이해 LA만의 유일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한인 작가 이강승, 곽영준, 문지영씨를 초청했다. 해머 뮤지엄 무료 전시회 ‘메이드 인 LA 2023’에 초청된 한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 이강승 작가


LA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퀴어(성소수자) 역사가 미술사와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배제된 소수자의 서사를 새롭게 발굴해 가시화하는 작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역사학자처럼 공공 및 민간 아카이브를 찾아 사진, 책, 일기, 미술품 등을 찾아 대형 인쇄물이나 노동 집약적인 드로잉 및 텍스타일 작품의 기초가 되는 자료들을 찾아낸다. 이러한 집요한 탐구 과정을 거친 전시는 한국의 퀴어 아카이브에 소장된 1,500종이 넘는 출판물을 스캔한 표지를 보거나 에이즈 운동가 오준수씨가 직접 쓴 편지를 트롱프뢰유(실제같은 속임수 그림)로 그린 작품을 소개하는 등 소외되고 억압된 역사에 대해 보여준다. 전통적인 아카이브 자료의 프레젠테이션과는 달리, 이강승의 많은 프로젝트는 관객을 내러티브나 전기로 초대하는 더 조용하고 완곡한 방식을 취한다. 이강승은 이들에 관한 아카이브를 흑연과 색연필 드로잉, 금실 자수, 태피스트리, 도자기, 직물 조각, 네온 작업 등 작가의 몸을 통해 완성되는 노동집약적 매체로 전유함으로써 역사를 새롭게 쓰고 상상하는 대안적인 방식을 제안한다. 작가는 작품 제작에 인종, 성적 지향, 출신 등이 다양한 동료 미술인을 협업자로 초대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서사를 쓰는 일에 동참하면서 또 다른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된다.

■ 곽영준 작가

2020년 카파(KAFA)상 수상자인 곽영준 작가는 조각 작업에서 캐스팅한 신체를 자르고 대담한 색채와 질감을 통해 추상화한 주조 신체를 사용한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최근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인상을 포착하는 섬세한 용기인 역주형 ‘스킨’ 조각 작업을 하고 있따. 신체 형태를 반짝이는 모조 다이아몬드 층으로 덮음으로써 그는 애초에 사람들이 신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 독특한 분장과 춤을 통해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는 드래그 문화에서 파생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과도한 가시성과 위장에 대한 즐거움과 필요성을 모두 제시한다. 이 작업은 2011년 파트너 마빈 아스토가와 함께 결성한 ‘드래그 일렉트로닉 댄스 노이즈 밴드 Xina Xurner’의 드래그 연주자이자 리드 싱어로서의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조각과 영상 작품을 통해 가부장적인 시선과 타자화하는 폭력성에 온몸으로 맞서는 퀴어적 몸짓에 주목해온 곽영준에게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정의될 수 없다. 다중적이고 혼성적인 개인의 정체성을 담은 신체로 작품을 표현하며 작업에서 제시되는 신체는 이성애적 관점을 넘어 퀴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곽영준 작가는 오는 24일(화) 오후 7시30분 해머 뮤지엄에서 열리는 노크 ‘여성적 부조리: 2023년 메이드 인 LA의 퀴어 바디’를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 문지영 작가

문지영 작가는 일상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은 소형 아크릴 회화 작업을 한다. 친밀하고 고요한 작가의 생활 공간, 남가주의 도시 풍경, 공공모임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는다. 미세한 붓으로 정교하게 표현되는데 개별적이고 세밀한 일상을 묘사함으로써 구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림의 가장자리 너머에 무엇이 존재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는 설거지, 아기와의 낮잠, 미술 학교에서의 하루, 동네 통근길 등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동시에 더 큰 영화적 이야기의 스틸컷처럼 보이는 것을 렌더링한다. 이처럼 감속, 가족 유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장면을 전면에 내세워 ‘사소한’ 이야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작가의 야외풍경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그림과 같은 수준의 디테일을 시도하면서 미세한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작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솔직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 주제는 가족, 친구 또는 낯선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거나 조깅을 하거나 자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등이다.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그림들은 그녀의 세심한 렌더링을 통해 마치 분류학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배열하여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정돈과 질서를 만들어내는 풍부한 사물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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