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로드트립은 ‘데스밸리-라스베가스-그랜드캐년-홀슈스밴드’의 5일간의 여정이었다. 총 이동거리가 약 2,960km, 운전시간은 30시간 이상으로 5세, 6개월 아기와 함께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이 곳들은 한번 다녀온 곳이다. 20세 겨울, 친구와 트렉 아메리카(Trek America)라는 프로그램으로 3주간 미국 서부에서 남부를 거쳐 동부까지 횡단하는 배낭여행을 했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덴마크 12명 정도 되는 친구들과 국립공원에서 캠핑도 하고 이동하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웃고 즐겼던 첫 자유여행이었다. 그 여행지에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간다니… 정말 감회가 남다르다는 표현이 딱 맞다.
산호세에서부터 4시간쯤 달렸을 즈음 푸릇함은 사라지고 돌산과 협곡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화성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이집트 고대국가 같기도 한 벌판에서 1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니 꼭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데스밸리의 샌드 듄에 올라 신발을 벗고 모래를 밟았을 때 차가우면서 까실거리지만 보드라운 그 느낌은 스무살의 천진난만했던 내가 모래 위를 뛰어다녔던 촉감 그대로였다. 모래를 한참 밟고 있다 눈을 떴는데 딸이 온몸으로 모래를 느끼며 뒹굴고 있었다.
이튿날 도착한 라스베가스의 번쩍거리는 화려함과 음악소리 역시 여전히 들썩이게 만들었다. 메인스트립 호텔에 짐을 풀고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를 보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걸어 나오는데, 예산이 넉넉지 않아 중심지에서 떨어진 저렴한 Inn을 잡고 친구와 택시를 타고 나오던 어리고 발랄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난 번쩍거리는 호텔들을 보며 다시 이곳에 여행하는 날이 올까, 결혼하면 이런 호텔에서 잘 수 있는 건가 상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랜드캐년에서는 예전 가이드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딸에게도 눈을 감고 올라오다 뷰포인트 앞에서 눈을 뜨도록 했다. 상상이상으로 광활하면서도 장엄했던 벅찬 감동이 온몸으로 다시 느껴졌다. ‘와… 멋지다’ 감탄에 감탄만 했던 20살의 소녀는 ‘맞아, 이거였어…’ 먹먹한 그리움을 내뱉는 아이 둘 엄마가 되었다.
다시 찾은 이곳에서 스무살의 나를 잠시 만났고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올 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경관들로부터 위로와 힘을 받았다. 한동안 이룬 것 하나 없이 30대가 흘러가는 것 같아 작아졌었는데, 너무나 그대로인 이곳은 나에게 잘 살아왔다고 안아주는 것 같았다. 10시간을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산타클라라 표지판을 보며 ‘드디어 집이다’를 외치는데 언제부터 여기가 내 집이었나 싶은 요상스러움까지 여운이 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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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은 /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