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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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2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

2023-09-21 (목) 강창구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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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생물 중에서 가장 오래 남아있을 생물로 개미를 꼽는 연구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그 이유로 개미는 위가 2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든 생물들은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 생물학적 기능을 하는 신진대사를 위해서 위를 갖고 있는데 개미에게는 ‘사회적 위’라고 하는 별도의 위가 있어서 이는 자신을 위하기보다는 동료 종족들의 부상 등 위기에 처한 이웃을 위해서 예비해 놓은 식량 보관 창고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단식을  몇 차례 해본 적이 있다. 짧게는 3일, 길게는 열흘간을 했다. 구태여 누구에게 알릴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가족이나 주변에는 알려 둘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의 단식은 경우가 한참 다르다.  해야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기(氣)가 막히는 경우, 본인의 의지나 신념을 알리고 이를 관철하려는 등, 흔치는 않지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결행한다. 반드시 결과를 정해 놓지 않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단식 3주를 지나서 4주 차에 접어들었다.

필자는 2017년 3월 제19대 민주당 내 경선 때까지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자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가장 노무현다운 캐릭터여서 기대를 모았으나 대세는 이미 그가 아니었다. 1차 경선에서 과반을 넘긴 문재인 후보는 대선 본선에서 당선된다. 그리고 난 뒤에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주당 내부의 이재명에 대한 비사(秘史)가 있다. 경선에서 깨끗이 승복한 그에게 민주당 내의 주류 중 일부에서는 이미 끝난 경선, 그것도 패배한 이재명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대선 상대후보였던 그에게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도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지속되어서 이재명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게 되었다. 그의 과거의 축적이 오늘이고 그의 오늘이 앞으로 그가 가는 미래일 것이라는 생각이 점차 더 선명해졌다. 노무현처럼 기존 정치인들의 생각과는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그가 경기지사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는 여유 있게 당선되지만 경기지사 본선에 남경필 전 지사와 대결하는데 엉뚱하게도 민주당 내에서 상대인 남경필을 지지하는 움직임들이 많았다. 그러나 또 경기지사에 무난히 당선된다.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을 거쳐 본선에 도전하지만 0.73%의 차이로 석패하고 깨끗이 승복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고개 숙여 책임지고 참회와 반성을 했다. 이런 일에 대한 본인의 자책감도 그를 단식으로 내몰았던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선 5개월 후인 2022. 8월 77.77%의 득표로 민주당 대표가 된다. 야당의 대표로서 나라를 위해서 대통령과 만나서 서로 협조하고 싶다는 데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만나야 할 이유도 구태여 없을 것 같은데도 그렇다. 처음에는 미더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진정성이 더 돋보인다. 처음에 믿게 했다가 나중에 실망하는 것보다 그의 나중은 항상 더 나았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고달프고 힘들게 산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적어도 현재까지 그의 길은 너무나 많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의 단식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할 말이 많고 억울하면 저럴까 까지는 바래지도 않는다.
경찰서에 한 번도 안 가 본 사람들이  376번 압수수색(23.9.16현재)을 받고 있는 그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건 이미 정상적인 재판이 아니다. 이재명은 13년전부터 검찰조사를 받아왔다. 단정은 이를 지 모르지만 이재명은 깨끗하다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  

부모 잘 만나 억지 공부해서 남 앞에 좀 서있다고 실눈 가늘게 뜨지 마라. 이재명은 1964년생이니 이제 59세다.  그 당시에 돈이 없어서 중학교도 못 가고 공장생활을 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   성남시장인 오빠를 둔 여동생이 화장실 청소부를 하다가 쓰러져 죽을 정도로 가족관리를 철저하게 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함부로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 떠들지 마라.  밥이 없어 배고파 보지 않고, 돈이 없어서  단 하루도 굶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단식으로 묵언의 항변을 하는 사람을 두고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거 아니다.

김영삼이 목숨을 건 23일 단식을 이어갈 때 안기부 직원들이 단식장소 앞에서 불고기를 구워 먹는 일들이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제는 ‘나눔이 뭔지 몰라도 되는 사람들’ 이 거의 없는 줄 알았는데  슬겅슬겅 머리를 내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국가건 개인이건 간에 세상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들어섰으니 인간이 발밑에 하찮게 보았던 개미만도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강창구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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