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콘클라베 속으로…유흥식 추기경이 밝힌 투표과정과 뒷얘기

2025-05-10 (토) 05: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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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펼쳐진 콘클라베 체험 전해

▶ 깜깜이 투표? “명부로 사전 정보 공유·’5분 발언’으로 성향 파악”

콘클라베 속으로…유흥식 추기경이 밝힌 투표과정과 뒷얘기

콘클라베 위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들 [로이터]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는 최근 동명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다.

잠긴 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콘클라베에 한국인 성직자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 그 생생한 경험을 직접 들려줬다.

◇ "표가 확 쏠렸다"…4차 투표에서 탄생한 레오 14세 교황


콘클라베는 첫날인 7일에는 오후 한 차례만 투표하고 둘째 날인 8일 이후부터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하루 총 네 번의 투표가 진행된다.

추기경들이 교황으로 누구를 선출한 것인지 투표지에 이름을 적어서 내는 비밀 서면 투표 방식이다. 추기경 선거인단 133명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 벽화 '최후의 심판' 앞에서 한명씩 선서하고 표를 제출한다.

투표가 끝나면 제비뽑기로 선발된 추기경 8명이 133장이 정확히 맞는지 확인한 뒤 개표가 진행된다.

개표를 맡은 추기경은 투표지를 확인한 뒤 마이크에 대고 이름을 외친다. 이를 듣고 추기경들이 저마다 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메모지에 기록해둔다고 유 추기경은 전했다.

개표가 모두 끝나면 누가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최종 결과를 발표한 뒤 교황 선출 요건인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모든 투표용지는 비밀 유지를 위해 소각한다.

이때 추기경들이 메모한 기록도 함께 수거한 뒤 태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유 추기경은 설명했다.

이번 콘클라베는 이틀째인 8일 4차 투표에서 새 교황 레오 14세를 선출했다. 유 추기경은 투표 결과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첫 투표에서 몇 분이 두드러지게 표를 얻었고, 두 번째 투표에서 더 좁혀지고, 세 번째 투표에서 확실히 더 좁혀졌다"며 "네 번째 투표에서는 (레오 14세 쪽으로) 표가 확 쏠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 선출에 필요한) 89표를 넘긴 걸로 확인되자마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치고 야단이 났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는 레오 14세 교황으로 선출된 미국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100표 이상을 획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는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외부에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선자는 교황직을 수락한 뒤 교황명을 정해야 한다. 이후 대·중·소 크기로 미리 준비된 흰색 수단을 입고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나가 인사한다.

유 추기경은 "외부에서는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투쟁처럼 묘사되고 정치적 야합이 이뤄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영화 '콘클라베'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추기경들이 엉터리라고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 추기경단 명부로 사전 정보 공유·'5분 발언'으로 성향 파악

추기경 선거인단 133명은 콘클라베 하루 전인 6일부터 바티칸 내 숙소에서 지낸다. 이때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를 제출해야 하고 외부와의 접촉은 일체 차단된다.

유 추기경은 "갑자기 휴대전화가 없어지니까 바깥소식도 들을 수 없고 이상했다"며 "이후 콘클라베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다고 잡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심이 걸린 거였다. 추기경들이 한바탕 웃었다.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추기경 선거인단의 80%는 최근 12년 사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뽑았고, 20명은 지난해 말 추기경이 돼 상당수가 서로 일면식도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콘클라베가 '깜깜이 투표'가 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유 추기경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 전 추기경단 전원의 프로필이 담긴 명부가 추기경 선거인단 133명에게 배포됐고 이를 근거로 다른 추기경의 정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를 모르는 채 투표가 진행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거의 매일 진행된 추기경단 회의에서 추기경들은 각자 발언 시간을 활용해 향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자질을 논의했다.

지금까지는 '3분 발언'으로 알려졌지만 유 추기경은 주어진 시간이 5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유 추기경은 "각자 앉은 자리에서 버튼을 누르면 발언권이 생긴다"며 "그러면 화면에 그 사람의 이름과 국적, 약력 등이 나오고 발언은 6개 국어로 통역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 발언을 듣고 추기경들이 '누구를 뽑자'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마음속에는 어떤 사람이 됐으면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추기경으로는 1978년 10월 이후 약 47년 만에 콘클라베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유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에서 지급된 펜과 문서 바인더, 추기경단 명부, 교황 선출 과정의 설명서 등을 모두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할 계획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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