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객 철도공사 앰트랙이 가장 좋아하는 저명인사는 단연 조 바이든이다. 유명인사들 중 바이든 만큼 앰트랙을 많이 이용한 고객은 없다. 오랜 세월 그의 별명은 ‘앰트랙 조’였다.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한 36년 동안 그는 델라웨어, 윌밍턴에 살면서 워싱턴 D.C로 통근을 했다. 매일 아침 90분 동안 기차를 타고 연방의사당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다시 기차를 타고 퇴근했다. 기금모금 파티나 칵테일파티 등 저녁행사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워싱턴 정계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인 그가 진짜로 워싱턴 생활을 한 것은 2009년, 부통령이 되어 관저에 살면서부터였다.
그가 편도 110여 마일의 장거리 통근을 고집한 이유는 하나, 아들들 때문이었다. 엄마 없이 자라는 어린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몹시 강했다. 아버지로서의 절절한 사랑, 허망하게 떠난 아내와 딸에 대한 자책, 그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감 등이 고루 작용했을 것이다.
바이든은 정치인으로서 운이 좋은 편이지만 가족사에는 불운이 깊게 박혀 있다. 잘 나간다 싶을 때마다 날카로운 쇳덩이가 날아들 듯 참혹한 사건들이 터졌다. 결혼 6년, 신혼에 아내와 딸을 잃었고, 승승장구하던 아들은 40대에 병사했다.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지애(斷腸之哀) 그리고 참척의 고통을 그는 견뎌내야 했다.
아내는 1972년 12월 삼남매를 태우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러나갔다가 자동차사고를 당했다. 서른 살 채 못된 바이든이 연방상원 선거에서 승리해 집안이 온통 축제분위기일 때였다. 아내와 돌쟁이 딸은 죽고, 두 살과 세 살의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바이든은 상원 진출을 포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정계 선배들의 충고로 마음을 바꾸고 아이들이 누워있는 병원침상 옆에서 의원선서를 했다. 이후 그는 오로지 두 아들을 축으로 삼으며 살았다. 그의 삶에 새 기운이 돈 것은 1977년 지금의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와 재혼하면서부터였다.
바이든의 큰 자랑이던 장남 보 바이든이 떠난 것은 2015년이었다.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주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아들이 뇌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46세. 학벌, 능력, 인품, 배경, 경력, 사생활 등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공직자이자 타고난 리더였던 보는 델라웨어에서 인기 최고의 정치인이었다. 보는 “장차 대통령이 될 게 분명하다”며 “바로 나, 모든 단점을 걸러낸 나”라고 바이든은 뿌듯해했다. 그런 아들을 그는 잃었다.
그리고 남은 아들은 차남 헌터. 바이든의 ‘아픈 손가락’이다. 연년생인 형제는 사이가 좋았다. 늘 같이 붙어살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차이가 드러났을 것이다. 빈틈없이 완벽한 형과 달리 헌터는 말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며, 감정에 치우치는 성향. 그만큼 허점이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장남에게는 자랑스러운 시선, 차남에게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을까.
헌터는 10대 때부터 음주를 시작했고, 대학생 때는 코케인에 빠져 살았다. 대학졸업 후 가톨릭 봉사단체에서 활동했고, 예일 법대를 나온 후에는 법률가 겸 로비스트로 한때 잘 나갔지만 중독을 끊어내지 못했다. 특히 형 보가 죽은 후 그는 완전히 망가졌다. 술과 마약, 창녀와 스트립클럽에 빠져 살았다. 결국 20여년 결혼생활이 깨지고, 그 와중에 형수와 불륜에 빠지고, 스트립댄서와의 하룻밤으로 사생아가 태어나기도 했다. 재활치료센터를 무수히 들락거렸던 그는 근년 재혼을 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그런 아들을 바이든은 한 번도 내친 적이 없다. 항상 따뜻하게 품어서 너무 무르다는 비판도 받는다. 가족을 잃는 데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 탓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은 그 역시 너무 힘들어서 아들을 껴안고 소리쳤다고 한다. “내가 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무섭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 좀 해봐라.”
헌터는 아버지에게 부담이 될까봐 멀리 떨어져 말리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 챙기기는 여전하다. 매일 전화해 아들의 안부를 챙긴다. 부족해서 안쓰럽고 애틋한 그래서 늘 가슴 저린 ‘아픈 손가락’이다.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주 아버지와 아들에게 동시에 일이 터졌다. 아버지는 탄핵조사를 받게 되었고, 아들은 특검에 기소되었다. 공화당의 캐빈 매카시 연방하원의장은 12일 하원 상임위들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지시했다. 바이든이 부통령일 때 헌터는 해외기업들과 ‘수상한’ 밀착관계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업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거액의 연봉을 받았다. 탄핵조사는 아들의 사업상 거래에 바이든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밝히려는 것. 공화당 강경파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의혹이다. 하지만 정치적 공세로서 효과가 있을 뿐 실제 탄핵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바이든에게 전혀 흠집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편 헌터는 14일 마약중독에 대한 허위진술 및 불법총기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자녀가 기소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원 탄핵조사 과정에서 그리고 2024년 대선 캠페인 중 바이든의 정적들은 이 문제를 시끄럽게 들먹일 것이다. 헌터가 결국은 아버지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었다. ‘아픈 손가락’으로 인한 바이든의 시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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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