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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할아버지의 꿈

2023-09-13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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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3시 반 쯤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노아의 첫 게임이 그 날 저녁에 열린다는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이메일에는 내가 초조하게 기다리던 또 다른 내용이 담겨있었다. 노아가 주전 선수로 출전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김노아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3년 전에 졸업하고 미시간 주립대학에 스카우트 된 한인 풋볼선수이다. 고등학교 10학년 때 이미 주전 쿼터백으로 학교 팀을 버지니아주 챔피언으로 이끈 스타 선수였다. 고교 농구팀에서 포워드로도 활약할 정도로 큰 키에 잘 생긴 멋진 청년이다. 대학에 진출 후 첫 해는 출전 선수 명단에 일부러 올리지 않아 현재 나이로는 4학년이지만 풋볼 선수로는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2년을 뛸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작년까지는 후보 선수였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경쟁자는 2년 후배였다. 그 후배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선수로 알려졌고 노아에 비해 오히려 더 좋은 체격 조건을 지니고 있어 노아의 주전 자리 획득에 보장이 없었다. 올 봄부터 시작한 경쟁 기간 내내 코치는 누구를 낙점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코치가 내심 결정을 내렸더라도 외부에 발설을 안 하니 경쟁 당사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상당히 긴장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아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노아의 게임에 자주 갔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못지않게 내가 노아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아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에 대한 감동도 큰 이유이다. 노아 할아버지는 내가 현직 교육위원인지 여부에 상관 않고 노아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이번에 주전 쿼터백 경쟁 과정 중에도 수시로 언론 보도 내용과 비디오들을 내게 보내주었다. 덕분에 나도 첫 게임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주전 쿼터백 선정 소식을 공개하겠다는 코치의 언명에 내심 불안해하며 혹시 어디에서 힌트가 될 만한 것은 없을지 종종 인터넷 검색을 하곤 했다. 그러니 내가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게임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에 전해 받았던 주전 쿼터백 결정 소식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오래 전 노아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해준 당신의 꿈이 생각났다. 복권 당첨만큼 허황되다고 여길지 몰라도 할아버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아름답고 따듯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나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지 좋은 자리로 표를 구해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그 꿈은 수퍼보울에서 노아가 우승팀의 쿼터백으로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꿈은 풋볼 선수라면 모두 한 번 쯤은 가져볼 수 있고, 실현 가능성이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들겠지만 나는 그 꿈 얘기를 듣는 순간 같은 꿈을 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수퍼스타였던 노아가 대학에 진출해 첫 3년을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마음도 우울했다. 그런데 주전 자리 진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했고 실제로 주전선수가 되어 치른 첫 경기를 정말 온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게임 초반 공격이 잘 안 풀릴 때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31-7이라는 여유 있는 점수 차로 게임을 마쳤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게임 다음 날 노아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내내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팔십대 후반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노아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마치고 이번 시즌 중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치러질 노아 팀 게임 표를 구입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노아야, 나도 네 할아버지가 구해주실 표를 가지고 수퍼보울 게임에서 너를 보고 싶단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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